왜 교회를 떠났습니까?

왜 교회를 떠났습니까?

[ 기독교교육이야기 ] 기독교교육이야기<11>

장순애 교수
2014년 10월 20일(월) 20:13

십 년째 단골인 정육점. 어느 날부터 주인 아저씨께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 달력에 '교회 국거리'라고 적혀 있길래 "고기 배달만 하지마시고 교회 가서 예수님도 만나보세요. 예수님 만나면 참 좋아요." 그런데 아뿔싸, 왕년에 청년부 총무였단다. 청년부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는데 정작 지금은 교회에 안다닌단다.

이유가 있었다. 아저씨는 청년부 총무로 어머니는 심방과 전도, 식당봉사에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 일을 했는데 그만 권사투표에서 떨어졌단다. 젊은 혈기에 목사님께 따졌는데 목사님이 "다 좋은데 공부가 짧아서 권사하기 어렵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못배운 게 한이었던 어머니와 그 아들, '사랑, 사랑'하는 교회가 싫어지고 그 사랑이 다 가짜요, 위선으로 보이기 시작해 그날로 뛰쳐나와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돌아가야지요. 예수님이 뭔 잘못이래요." 말씀하시는 아저씨의 표정이 어찌나 슬퍼 보이던지 가슴이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이  나로  하여금  교회학교뿐 아니라 '교회, 그 자체' 그리고 '교회에서의 삶, 그 전체'가 교육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그 아저씨는 청년일 때까지 '사랑'을 입으로 말하고 강조하고 가르치는 명시적(explicit) 커리큘럼을 교회학교를 통해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교육은 명시적 커리큘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과 심지어는 모든 성인교인도 예배와 교육을 통해 명시적으로 배운 것들을 교회전체의 관계들 속에서 보면서 느끼고, 확인하거나 의심하며 따라하거나 거절하면서, 혹은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무시하면서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으로 형성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의도적 교육과정에서 배운 명시적 내용들이 학습자들의 삶속에서 구체적인 힘을 발휘하려면 교회는 교회학교 중심의 교육에서 전 교회의 교육으로, 그리고 명시적 커리큘럼뿐 아니라 잠재적 커리큘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교육의 책임이 교회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 전체가 다음세대의 신앙을 갖게할 수도 혹은 버리게 할 수 있는 엄청난 교육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교회가 곧 교육 공동체인 것이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만 학습자가 아니다. 교인 전체가 학습자들이다. 교회의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 그리고 교회의 모든 운영방식과 과정들이 다 '하나님이 우리의 참 주인이신가? 그렇지 아니한가?'를 가르치는 강력한 도구다.

웨스터호프(Westerhoff III)가 했던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신앙을 갖게될까?(Will Our Children Have Faith?)" 교회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친 것들을 우리의 어린이들과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이 교회의 분위기와 교회에서의 삶의 전 과정들과 관계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대답이 '아멘'이 될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장순애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