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 예화사전 ] 예화사전

김충렬 목사
2014년 09월 29일(월) 18:09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는 전도서 기자의 말(전 1:10~11)은 2006년을 기점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말인 디지털과 아나로그를 합친 '디지로그(digilog)'에도 해당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야 말로 대표적인 디지로그 사건이 아닐까?

이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어령 박사의 말대로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성육신 하신 사건이야말로 진정한 디지로그 개념이다. 하늘의 디지털을 버리시고 땅의 아날로그를 끌어안으시며 디지로그의 구원공간을 만드신 예수님이 그 완전한 본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오고 오는 세대에 기억시키기 위해 만드신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이다.(마 26:26~30, 고전 11:23~29 등)

수많은 말씀과 이적, 섬김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왜 마지막 메시지를 비록 유월절 식사라는 명분은 가졌지만 먹는 것으로 마무리 하셨을까? 왜 그 흔한 빵 조각을 '나의 몸'이라 하셨고, 그 값싼 한 잔의 포도주를 '나의 피, 언약의 피'라고 하셨을까? 이어령 박사는 거기에 대해 이렇게 해석한다(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중앙일보 2006년 1월 1일자 기사).

"비록 십자가는 혼자 지고 가실 수 있었지만, 최후의 식사만은 혼자하실 수 없었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제자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하면서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맡던 천국의 메시지(정보)를 어금니로 깨물어 삼키는 법을 깨닫게 해서 예수님과 구체적으로 하나가 되도록, 그 결과 제자들 서로가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공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스스로 한 조각의 빵이 되시고, 한 잔의 포도주가 되어 제자들에게 먹게 하신 예수님은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 서로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생명의 미디어로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보화 사회에서 '미각(味覺)'은 디지털화 할 수 없는 최후의 아날로그적 감각과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진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육체적, 생물적, 경제적, 문화적 정도에서만 보아온 먹는 문제를 이제부터는 정보 미디어로서도 평가하게 된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이러한 문제를 미리 내다 보신 듯 제자들과 오고 오는 시대의 교회를 향하여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 이것은 언약의 피니 받아먹고 마시라' 하셨다. 따라서 우리들은 디지털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메말라가기 쉬운 감성과 영성, 성도 간의 관계, 비신자들과의 관계를 위해, 더욱 더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프라인상의 성찬성례전에 참여하여 관계를 새롭게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김충렬 목사 / 영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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