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惻隱之心)

측은지심(惻隱之心)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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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26일(화) 14:26

금주섭 목사
WCC 선교국 총무


얼마 전 미국장로교회 다문화목회 전국대회에 다녀왔다. 최초로 미국을 다문화 사회로 선포한 케네디 대통령을 기념하여 그가 암살 당하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낸 텍사스주 포트 워스시에서 대회가 개최됐다. 그의 기념비에서 무심코 읽은 한 글귀가 대회 기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하나 영적으로 빈곤한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아이리쉬 계통의 가톨릭 후보가 대선에 나서자 개신교회는 불안해했다. 그는 휴스턴 개신교목회자연합회에서 그가 꿈꾸는 영적인 사회는 약한 자들을 편들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소수 인종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라고 선언했다.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논쟁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치와 하나님의 나라에 바탕을 둔 그의 정치적 비전을 선언한 것이었다. 결국 그 비전 때문에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암살 당하고 말았다.

예수님 당시 네 부류의 집단들이 서로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개혁의 대안이라고 경쟁했다. 고상한 바리새인들. 그들은 성전의 종교 권력만 지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처형했다. 그리고는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율법 조항들을 강요하며 그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몰아 붙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자신들만이 제사장의 지위를 독점했다. 그 체제의 근간인 안식일 법을 뒤흔드는 예수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많이 배운 서기관들. 그들은 세상권력만 지킬 수 있다면 부활 교리와 같은 종교적 신념들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들은 율법을 필사하고 재해석하는 지식을 지녔음에도 그들의 학문을 오로지 출세만을 위해 사용했다. 그들에게 예수의 새로운 통찰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현실도 모르고, 유대교의 역사와 교리에도 맞지 않는 한 이상주의자의 곧 사그러들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젤롯 당원들. 자신들만이 세상의 정의를 위해 일한다고 믿었다. 낡은 혁명이론을 답습하며 변화할 줄 몰랐다. 무장투쟁을 부추기며 테러도 서슴지 않았다. 폭력이 익숙해지면서 인간성을 상실했고, 낡은 사회분석 이론을 강요하는 진보를 가장한 수구세력이 되었다. 약자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일상의 삶에서의 실천은 전무한 진보이념의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혁명의 배신자로 보았다.

거룩한 무리 에세네파. 세상은 희망이 없고 썩어 문드러져 파멸할 것이라면서 심판을 피하기 위해 사막의 동굴 안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했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내 알 바 아니며 나만 잘 믿어서 천국에 가면 그만이다. 좀 더 고상하게 말하면 영적인 수련을 통해 성화를 이루는 것이 먼저이며 그 영적인 능력만으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래서 문을 잠그고 자폐적 신앙을 키워 갔다. 그들에게 예수는 영적으로 미숙하고 신앙의 사회적 측면만 강조하는 설익은 지도자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예수. 안식일 연못가의 아픈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죽을 처지를 당하신 그분! 배고픈 자, 목마른 자는 누구든지 오라 하시며, 돈이 없어도 괜찮다고, 못 배워도 괜찮다고,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가져가라 하신다. 내가 대신 죽어도 괜찮다 하신다. 그 목숨 값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래서 누구보다 빈한했던 우리들의 삶이 그분의 생명강가에 뿌리를 내려 마침내 열매를 맺고 우리들을 통해 열방과 민족들을 치유케 하신다.

맹자는 아기가 위험도 모르고 깊은 우물가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달려가 그 아이를 안는 것을 측은지심으로 표현했다. 우리 주님의 측은지심은 민망히 여기시는 마음(compassion)이다. 타인의 안타까운 고통을 보면 주님 자신이 창자가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고통을 느끼셨다. 그 측은지심이 기적을 낳게 한 동인이었다. 그 주님 마음 본받아 사는 것이 믿음이다. 그 주님 마음 펼치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오늘 대한민국, 주님의 측은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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