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사람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 논단 ]

이창연 장로
2014년 08월 12일(화) 15:29

이창연 장로
총회 회계ㆍ소망교회

 
사람은 죽을 때 유언을 남긴다. 이때 "내가 돈을 100억만 더 벌었더라면", "내가 박사학위를 취득했어야 하는데"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여보, 미안해. 내가 더 잘해 줬어야 하는데", "애들 어디 있어? 애들이 보고 싶네"라고 말한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출세도 아니다. 샤람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따라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려면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하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도 허무함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영원히 살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천년만년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아들과 블록쌓기를 함께 해주면 아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주말에 "오늘은 아빠가 만든 비빔밥 먹는 날"이라고 외치면 아내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지리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요즈음은 입맛이 없다는 어머니 말씀에 "지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라는 말 한마디에 잃었던 어머니 밥맛이 돌아올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말하진 않는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그러나 "나중에 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으로 뒷전에 밀쳐둔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을 미뤄둔 사이, 아들은 블록 쌓기를 하기엔 너무 커 버리고 아내는 무언가를 기대하기에는 지쳐버리고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버린다. 그러니 지금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당장 사랑하자. 우리는 정말 바쁠 수 있다. 그래서 가족끼리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외식을 못할 수도 있다.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조차 없을 수 있다. 눈코 뜰새 없이 바빠서 선물 준비도 못할 수 있다. 괜찮다.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만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1초 안에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알지? 당신이 내겐 최고야" "어머니, 항상 감사해요" "나는 내 아들이 정말 자랑스러워"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아무리 물질이 중요한 현대사회라 하더라도 역시 사람에겐 사람이 중요하다.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미래에 행복해지자고 현재의 행복을 대부분 희생시키는데, 만약 미래에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자신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미래의 행복을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 같지만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가족과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보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 가족과 자신의 행복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대부분 희생시켰는데 실제로 미래가 다가왔을 때에는 행복해지지 못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현재를 희생한 뒤에 기대되었던 행복이 막상 미래에 얻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가는 세월 누가 막을 수 있나요'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은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사랑하는 부부도 이 세상에서만 함께 살 수 있지 저 천국에서는 같이 살수 없다지 않는가.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28~30)" 그래서 필자는 될 수 있으면 아내와 교회를 오갈 때도 함께 가려고 하고 새벽제단을 쌓을 때나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도 함께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누구라도 10년 후, 20년후에 까지 살아남아있다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같이,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행복을 파랑새 찾듯이 멀리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 행복은 바로 가까운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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