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위하여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위하여

[ 예화사전 ] 예화사전

김형준 목사
2014년 06월 30일(월) 17:16

2004년 8월, 미국 LA 공항은 흥분과 설레임의 열기로 가득찼다. 그것은 다름아닌 베트남 사람인 피터 누엔이라는 분과 한국 원양어선 광명 87호 선장이었던 전제용 씨와의 만남이었다.

이들은 1985년 11월 14일 남 중국해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피터 누엔은 패망한 월남을 탈출하여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96명과 함께 4톤 짜리 목선에 타고 있었다. 이름하여 '보트피플'이었다. 당시에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보트피플을 외면하고 있었던 실정이었다. 피터 누엔이 탄 배는 이미 엔진이 멈추었고, 기관실에 물은 들어오고 있었으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은 떨어졌고, 오랜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96명이 겹겹이 앉아 있었기에 죽음의 그림자는 이들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미 25척의 배가 모른척 하고 그냥 지나쳐버려서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외면과 버림받음에 대한 아픔이 더욱 현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때에 전제용씨가 선장으로 있는 광명 87호가 지나가게 된 것이다.

보트피플을 발견한 전제용 선장과 선원들은 보트피플을 모른척 하고 귀항하라는 본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가던 배를 되돌려서 이들을 구조하게 되었다. 25명의 광명87호 승무원들은 10여 일의 항해 기간 동안 보트피플의 회복과 생명을 위해 모든 희생을 다 감당하며 이들을 돌보아주었다. 보트피플은 부산에 임시 수용소를 거쳐서 미국으로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96명의 생명을 구한 전제용 선장은 모 기관으로 호출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게되고, 회사로 부터는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회사의 지시를 거역한 선장과 선원을 받아주는 회사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래서 자기의 과거의 경력과 미래의 꿈을 모두 접은 채 양식업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미국으로 건너가 의료인이 된 피터 누엔은 전제용 선장의 사진을 가족 사진과 함께 붙여놓고 감사를 잊지 않고 지내다가 수소문 끝에 찾게된 전제용  선장을  미국에 초청하게 된 것이었다. 전제용 선장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들을 구출하는 순간 자기의 과거 경력과 미래의 가능성을 다 포기할 각오를 했지만 이 모든 것보다 귀한 것은 바로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선장의 자리는 바다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가장 좋은  위치라고 말했다. 비록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할지라도 단 한번도 이 일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지금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수많은 생명을 버려두고 자신이 살기 위해 배를 빠져나온 선택을 후회함이 없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이유 속에 후회함이 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김형준 / 목사ㆍ동안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