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돼지 파동'

잊지 못할 '돼지 파동'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최태협 목사
2014년 06월 09일(월) 16:02

1984년 신대원 3학년 재학 중에 농어촌 개척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하여 목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집사님 가정에서 빨리 집으로 심방을 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신대원 재학 중에 통학용으로 타고 다니던 낡은 90CC 오토바이였다. 시골교회로 부임하면서 오토바이를 화물차에 실어 갔는데 매우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농로를 따라 부리나케 달려갔더니만 여집사님이 돼지우리로 끌고 갔다.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가 됐는데 새끼를 낳지 못하고 있으니 돼지가 순산하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신학교에서 목회상담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성도들을 상담하고 기도해야 하는지는 배웠지만 가축이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앞이 캄캄했다. 여집사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야 할까 아니면 돼지 배에다 손을 얹고 기도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돼지 축사 울타리를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오늘밤에 반드시 어미 돼지가 새끼를 순산하게 하시고 새끼를 낳되 많이 낳게 해 주십시오." 얼마나 축사 울타리를 붙잡고 흔들면서 열심히 기도했는지 축사 울타리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에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이 열 사람 미만인데 여집사님 내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전날 밤에 새끼를 낳지 못해 상심해서 나오지 않았나 염려되어 새벽기도를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심방을 갔다. 마당에서 집사님 이름을 부르니 여집사님이 축사에서 시뻘건 눈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전날 밤 9시부터 돼지가 새끼를 낳기 시작했는데 30분 간격으로 밤새도록 새끼 14마리를 낳는 바람에 한잠도 자지 못했고 새벽기도회에도 나올 수가 없었다면서 너무나도 기뻐하였다. 그날 아침 얼마나 신이 났는지 찬송을 부르면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얼마 후에 돼지 파동이 났다. 돼지 값이 비싸지다 보니 농가마다 돼지 사육을 하는 바람에 돼지 값이 폭락해 버리고 말았다. 어미 돼지가 젖이 부족해서 집사님 내외가 우유병과 분유를 사서 새끼를 먹여야 했는데 그렇게 키워봐야 분유 값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달 후에 집사님 내외는 구덩이를 파고 자식을 묻는 심정으로 14마리 새끼를 모두 파묻고 말았다. 가난한 시골농가의 비애를 맛보았다. 하나님 하필이면 왜 이때에 '돼지 파동'입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기도 한 번에 새끼 14마리를 낳아 그 마을에서는 꽤나 능력(?) 있는 전도사로 소문이 났는데 그만 기가 팍 꺾이고 말았다.

남집사님은 후에 장로가 되었고 여집사님은 권사가 되어 충성스럽게 봉사하다가 작년 연말에 두 분이 함께 은퇴를 했다. 교회 개척시 담임했던 전도사가 교회를 떠난 지 28년 후에 노회장이 되어 담임목사 위임, 장로 권사 안수집사 임직, 장로 권사 은퇴식 설교를 하였다. 은퇴하는 장로님과 권사님의 자녀 5명이 다 참석하였다. 모두 다 결혼하여 도시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열악한 시골 환경에서 비록 돼지 새끼 14마리는 땅에 묻었으나 자녀 5명은 신앙으로 잘 양육하여 훌륭한 신앙의 가문을 세운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최태협 목사 / 신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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