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선교하십니까?"

"목사님, 선교하십니까?"

[ NGO칼럼 ] NGO칼럼

최영일 목사
2014년 06월 02일(월) 17:14

언젠가 이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저소득층 및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교육지원사업인 '꿈을담는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한참 지구, 공기, 우주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질문했다. "목사님, 하나님은 그럼 어디에 계세요?" 다른 아이가 얼른 받아 "그것도 몰라? 하늘에 계시지." "아니야 우리 맘에 계셔." 그러자 옆에 있던 불교가정의 아이가 "부처님!"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교회 다니는 아이가 "난 부처님 싫어." "맞아 부처님은 우상이잖아." 자기들끼리 질문하고 답했다. 내가 잠깐 끼어들어 "얘들아,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존중해야지. 함부로 말하면 어떻게 해." 그러자 다른 아이가 "목사님은 부처님이 우상이라는 것도 모르세요? 우상을 섬기면 벌 받아요." 목사를 가르치려하는 꼬마 그리스도인의 입이 무섭기만 하다. "그래도 남의 종교를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그런 친절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이지."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뭐라고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꼬마 교인의 신념이 대단하다.

이러한 예는 성인들에게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날 베트남 여성이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소 상기되고 슬픈 목소리로 "목사님 저 교회 다니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으시나요?" 묻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센터에서 이제 막 상담사역을 시작하신 목사님이 그녀가 상담을 요청하자 대뜸 붙잡고 기도를 하고 신앙적 도전을 한 까닭이었다. 상담업무를 시작하기 전 센터의 선교적 입장은 다국적 출신 이주자들을 상담할 시 섣부른 전도를 통해 종교적 자유를 그르치지 않고 장기적이며 일관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사역자들을 가교로 자연스레 예배로 인도하는 방식의 선교를 강조했지만 수 년 동안 지켜왔던 원칙의 뜻과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선교에 대한 열정과 조급한 마음 때문에 저지른 일이었다. 센터의 이러한 원칙 때문에 열정적 선교의지를 가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 "목사님 선교하십니까?"였다. 그렇게 물었던 한 전문인 선교사 지망생 스태프에게 3년이 지난 뒤 내가 되물었다. "센터가 선교하는 것 같습니까?" "네. 목사님 선교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이주자들과의 만남 가운데 늘 '종교의 자유'라는 원칙을 그르치지 않았지만 제법 많은 이주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혹은 기독교 신앙에 우호적인 친구들이 되었다. 한 달여 동안 단 한 번도 "예수를 믿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함께 웃고 울던 어느 날 불교신자였던 한 캄보디아 청년은 "저는 이제 목사님의 하나님께 기도해요"라고 먼저 고백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형교회의 다문화예배나 선교센터가 아닌 기독교 정신을 따라 운영되는 최전선의 이주자 관련 NGO의 다문화선교에 있어 '몸짓으로 하는 선교'로 드러나는 '종교의 자유'는 공적인 서비스의 기본이기도 하거니와 종교의 자유의 원칙을 지킴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힘들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종교적 부담 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분노와 굴욕감속에 도움 받을 기회, 교육받을 기회를 포기하거나 주저하는 것을 막아줄 뿐 아니라 이 지점에서부터 상호간의 깊은 신뢰와 함께 참된 선교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신앙은 언제나 강압이나 강요가 아니라 감동과 설득과 이해를 통해 자발적동기로 얻을 수 있는 인간의 가장 깊은 헌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 경험을 비추어보면 이러한 신뢰와 원칙의 실천을 통해 선교적 접촉점은 결코 좁아지지 않았고 도리어 이주자를 넘어 센터가 속한 지역시민사회로까지 더욱 확장되어 갔다. 어느 순간 센터는 지역에서 이주자들과 시민사회의 소통과 만남의 장이 되어 있었고 지역사회의 이주자 정책을 주도해가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최영일 목사 / 김포이주민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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