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농어촌부 부활

총회 농어촌부 부활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최태협 목사
2014년 06월 02일(월) 16:57

신대원 3학년 1학기 말에 농어촌 개척교회 담임전도사 청빙 제안을 받았다. 그 지역에서 목회하시다가 도시교회로 임지를 옮기셨던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당시에는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1년 이상 단독목회를 해야 했는데 매를 먼저 맞은 사람이 낫듯이 단독목회 1년 조건을 먼저 채우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신학교 갓 졸업한 사람에게 단독목회지가 주어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1학기 기말시험을 끝내고 바로 시골로 내려가서 선보는 설교를 하고 이어서 2.5t 트럭 한 대에 신혼살림을 싣고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아내와 함께 이사하였다.

이른 아침에 짐을 싣고 서울을 출발했는데 문경새재를 넘어 동해안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해가 저물었고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예배당은 시골 신작로에 있는 200만원 전세의 다 삭은 양철지붕의 허름한 목조 가게였다. 작은 방 두 개의 사택은 가게 뒤편 마당의 한쪽 담벼락에 붙어있었고 마당 반대편에 수도와 화장실이 있었다. 예배당에 피아노가 없었고 사택은 방이 작아 피아노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가지고 간 아내의 피아노를 예배당에 놓았다. 시골에서 피아노 보기가 쉬운 때가 아니어서 성도들이 무척 좋아했다. 첫날 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느라고 가지고 간 큰 그릇을 다 동원해야 할 정도였다. 주일 중고등학생까지 30여 명이 예배를 드렸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여 1년 정도 목회하시다가 사모님의 건강이 악화되어 목회를 그만 두시고 목회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몇 가정 안 되는 교회였지만 부임 심방을 하면서 열심히 8월 한 달을 보냈는데, 9월 교단 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위한 1년 이상의 단독목회 규정이 삭제되고 말았다. 이 규정 때문에 상가의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1년 마다 바뀌면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고, 농어촌교회 목회자들도 1년만 채우면 도시로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닭 좇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는 말처럼 허망하기만 하였다. 앞으로 한 학기는 매주 10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서울로 통학을 해야 하는데 맥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다시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갈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농어촌 개척교회 목회에 발을 디뎠다가 18개월 만에 다시 서울로 컴백하였다. 18개월 있으면서 전세로 사용했던 예배당을 매입하였고 나중에 후임자가 예배당을 아담하게 잘 건축하여 지금은 면소재지 안에서 번듯한 교회가 되었다.

목사안수를 받기 위한 1년 이상의 단독목회 규정이 없었더라면 농어촌 교회에서 목회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부가 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시골생활의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규정 때문에 농어촌 교회 목회를 경험하였고 누구보다도 농어촌교회의 어려운 실상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농어촌에서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기회만 닿으면 진학과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난다. 성도들은 직장문제와 자녀교육 문제로 농어촌에서 도시로 전입하면서 도시교회로 수평이동을 한다. 그래서 농어촌교회는 도시교회의 모판과 같다고 말을 한다.

총회 농어촌부가 다시 부활한다. 도시교회는 모판과 같은 농어촌교회를 잘 섬겨야 한다. 농어촌부만 부활할 것이 아니라 농어촌교회가 생기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최태협 / 목사 ㆍ 신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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