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제3의 가족'

집은 '제3의 가족'

[ NGO칼럼 ] NGO칼럼

신예은
2014년 04월 02일(수) 17:36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새로운 주거 문화를 다룬 '공간 혁명, 작은 집'이라는 스페셜 다큐를 방영했다. 가족구성원의 소망이 오롯이 담긴 주택에 대한 내용이었다.
넓은 공간과 고급 인테리어의 위용으로 보는 이를 압도해버리는 저택이 아니라 작은 평수의 땅에 공간을 입체적으로 풀어 지혜로워 보이는 주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일 처음 소개된 곳은 작은 공간들을 높이를 달리 배치해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한 네 가족의 집이었다. 두 딸을 위한 놀이 공간을 곳곳에 꾸며 집 자체가 즐거운 놀이터처럼 보였다. 이어 책 만 권이 들어갈 수 있게끔 서재 공간을 다양하게 배치한 집주인의 자존심을 반영하여 설계한 집이 나왔다. 집 주인들을 부러워하다 문득 집 자체가 인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를 위한 공간 자체가 두 딸을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이고, 책이 효과적으로 배치된 공간이 바로 집 주인의 취향과 주관의 형태이다. 그러니 집은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주택만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건축회사에서 설계한대로 획일적 구조의 아파트에 살더라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집의 성격은 확연히 달라진다. 한 동에 몇 십 세대가 똑같이 생긴 거실과 주방, 방을 가진 집에서 살고 있지만, 각 집 주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과 성격, 취향 뿐 아니라 건강에 따라 공간의 얼굴이 달라지고 다른 인격을 품게 된다. 이 인격, 집이 중요한 것은 가족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집 또한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집에 따라 가족구성원의 인격이 변하기도 한다. 건축가와 인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 바로 한 개인의 정신을 찍어내는 게 바로 집이며 인간은 자신이 사는 장소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환경은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고 개인의 취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장소를 보면 그 사람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큐내용에는 가족의 개성을 담은 집에서 나아가 공동체 생활의 형태도 나왔다. 부산 남구에 위치한 일오집은 열 네 가구가 모여 각자 원하는 집을 설계하여 한 공간에 모여 살 수 있도록 했다. 개개인의 집은 최소한의 공간으로 구성하고 함께 돈을 모아 '일오집'이라는 공동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동공간은 창고, 아이들의 공동육아 장소, 날이 좋은 주말에는 열 네 세대가 나와 식사하는 식당이 되는 등 그들만의 생활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주요 장소였다. 일오집에 사는 사람들은 앞서 말한 주택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관계지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일오집에 살면서 더 관계중심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공동공간이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 먼저이지만 분명 그 공동 공간 자체가 공동체 생활을 더 돈독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일오집은 사람들의 관계 형성에 구심점 역할을 하는 제 3의 구성원이다.

한국해비타트가 짓거나 고치는 집은 사실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다기보다는 그저 최소한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집이다. 가족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되는 최소한의 생활공간에 지나지 않은 해비타트 집이 지니게 될 인격은 어떤 모습일까? 물론 그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충분한 휴식을 주고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는, 소박하지만 안락하고 제 기능에 충실한 공간이자 친구이면 좋겠다. 지구촌 곳곳에 아직도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집을 짓기 위해, 해비타트는 오늘도 어디선가 희망의 망치질을 이어나가고 있다.

신예은 과장 / 한국해비타트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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