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매너리즘

기도의 매너리즘

[ 기고 ]

김재양 장로
2014년 03월 25일(화) 17:15

 

최근 공중기도를 드리는 교계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지 교인들에게 기도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도를 드리는 게 일반화되어 있다. 또한 복달라는 기도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라고 드리기도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시편을 빌미로 '합쇼體'(註: 오소서, 합니다 등 상대편을 아주 높이는 體)의 종결어미의 '-소서'가 아닌 명령조로 "하소서" "주소서"를 남발하기도 한다.
 
성경에도 없는 말을 신학을 전공한 이들이 설교와 기도에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축복'이란 단어가 신구약 성경 전체에 102회(구약에 84회, 신약에 18회) 등장한다. "102번이나 나오는 축복이란 단어를 왜 성경에 없다고 하느냐"면서 억지라는 말이 가당찮다고 비웃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102번 전부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축복하고,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축복하는 등의 '하나님께 복을 비는 의미'의 축복뿐이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축복'이니, '하나님이 축복하시다'느니,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란 말도, 그런 종류의 뜻을 내포한 말은 성경 66권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느 신에게 복을 빌어 우리들에게 복을 내려 달라는지 30분 설교에 10번 이상, 3분 기도에 10번 이상 쏟아져 나오는게 요즘 세태이다. '기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 하나님의 뜻에 알맞도록,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경외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열정적으로, 신앙과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3항)이고, 이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응답으로 이루어진다'라고 정의했다. 과연 하나님과 인간과의 연결고리인 기도를 지도자급 인사들이 이렇게 해도 괜찮은가 묻고싶다. 

김재양 장로/대구상동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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