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과 '승리'가 이끌어가는 세상

'일등'과 '승리'가 이끌어가는 세상

[ 4인4색칼럼 ] 4인4색칼럼

김기태 교수
2014년 03월 18일(화) 16:07

오늘날 현대인의 불행은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끊임없는 중압감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철들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린이들은 줄곧 공부를 잘해서 친구들을 물리치고 이겨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린다. 공부 뿐 아니라 음악도 운동도 미술도 심지어는 봉사 실적 까지도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극성스런 부모의 일등만들기 프로그램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 취직을 한다고 해도 결코 이런 이기기 위한 경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승진 경쟁에서 이겨야하고 연봉 경쟁에서도 지면 안되고 업적과 실적으로 평가하는 구조 조정 대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에서도 동료에게 밀리면 그날로 끝장인게 오늘의 살벌한 직장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경쟁제일주의는 단순히 이기기 위한 경쟁을 넘어 오로지 일등을 해야 한다는 일등지상주의로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상이 온통 일등만을 찾는다. 공부도, 스포츠도, 수입도, 외모도 모두 일등만을 위해 존재하듯 우리 사회는 지금 온통 일등 만을 향해 달려가는 거대한 용암의 흐름과도 같다. 2등은 없고 꼴등은 더더욱 용납되지 않는다. 오로지 일등만이 필요하고 금메달만 인정받는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일등을 위해 작동할 뿐이다. 이런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일등지상주의를 부추기고 확대 재생산하는데 각종 언론 매체들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방송의 일등지상주의이다. 우선 방송은 모든 평가에 앞서 무엇보다도 시청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방송사간, 동일 시간대 유사 프로그램간, 인기스타가 총 출동하는 출연진간 경쟁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하는 살벌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방송 스스로 치열한 경쟁에 익숙한 습성 때문에 그 안에 담긴 프로그램이나 메시지도 일등을 향한 경쟁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일등지상주의는 하나의 승자를 위해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비인간적 이데올로기이다. 한사람의 승자가 존재하기 위해 때로는 수백, 수천의 동반자 즉, 패자가 아울러 존재하기도 한다. 사실은 승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빛나는 패자, 아름다운 2등이 얼마든지 많다. 지는 자가 있어야 이기는 자가 있고 2등이 있어야 비로소 일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패자와 꼴찌에게도 성원과 환호를 보낼 줄 아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해도, 경쟁시간대 프로그램을 앞서지 못해도 결코 흥분하거나 이성을 잃지 않는 방송을 성숙한 방송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에 패자는 없다. 패배한 것이 아니라 그 종목이 부족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나만이 특히 잘하는 또 다른 강점이 얼마든지 많다. 방송의 일등지상주의가 개성제일주의로 바뀌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도 이런 승리 또는 일등지상주의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회학교에서의 성적중심 교육과 전도, 봉사, 교구별 출석 실적에 순위를 매기는 일 그리고 각종 항존직 선거에서도 과열된 경쟁이 이루어지는 등 교회도 점차 '일등'과 '승리'에 휘둘리는 위험한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이다.

김기태
호남대 교수ㆍ한국미디어교육학회 회장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