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 과잉 시대

'스피치' 과잉 시대

[ 4인4색칼럼 ] 4인4색칼럼

김기태 장로
2014년 02월 13일(목) 10:02

김기태 장로
호남대 교수ㆍ한국미디어교육학회 회장

제발 '말을 잘 하는게 꿈'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남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하지만 요즘 이른바 '스피치'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과 욕구는 이런 차원을 훨씬 뛰어 넘는다. 한 마디로 '과잉'이다. 진정한 소통을 위한 목적보다는 과대 포장을 위한 기술 차원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 아니라 감추기와 속이기를 위한 요령 습득 정도로 스피치 기술과 전략을 남용하고 있다. 이런 식의 스피치 기술은 자칫 허위사실 유포나 과대, 과장을 위한 흉기로 사용될 수도 있다.

진정한 소통은 사실과 진실의 상호 나눔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방적인 설득이나 굴복과 같이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식의 스피치 즉, 말하기는 그래서 위험하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스피치 관련 책들은 대부분 상대를 자신의 생각대로 끌어들이기 위한 요령을 강조하고 있다. 듣는 사람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그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최대한 차단하여 심리적으로 허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 방식의 설득술을 내세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방식의 연습과 훈련을 스피치 기술 학습의 주요 내용으로 채운다. '소통'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무엇을, 왜 나눌 것인지가 빠져있다. 즉, 메시지 내용에 대한 논의는 아예 없거나 뒷전이다.

모든 스피치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평소 가지고 있던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 또는 느낌의 표현이 곧 말하기다. 그런 만큼 생각의 깊이가 깊을수록 말하는 내용에 깊이가 있다.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말이 실수가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인간은 내면에 이성적 자아와 감성적 자아가 공존한다. 이 양자간의 대화가 활발할수록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기 쉽다. 현대인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기 성찰, 내적 대화가 성공적인 스피치의 전제 조건인 셈이다.

진정한 소통은 잘 들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에 귀기울이는 자세가 없이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해야 그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알아낼 수 있다. 서로 상대방과의 차이는 줄이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노력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 바로 본래 어원적 의미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개념 정의다. 상대방이 말할 때 진지하게 듣기 보다는 다음 공격을 위한 자신의 말을 준비하는 전투적 말하기는 지양해야 할 나쁜 습관이다. TV토론 프로그램 출연자들에게 상대방을 최대한 몰아붙이고 공격하는 모습을 요구하는 현실이 바로 이러한 잘못된 소통문화를 낳는 요인 중 하나이다.

가장 바람직한 스피치는 결국 상대방과 마음을 나누는 즉, 공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그를 감동시키는 과정이 곧 진정한 소통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사회 전 영역에서 소통 부재의 부작용이 넘쳐나고 있다. 불통은 갈등을 낳고 이는 다시 대결과 싸움을 일으킨다. 지역, 이념, 세대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이 시대, 일방적인 굴복과 설득을 위한 스피치 기술이 아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나눔의 스피치 정신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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