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눈물 외면한 오늘의 문명은 '사상누각'

고난의 눈물 외면한 오늘의 문명은 '사상누각'

[ 교계 ]

한경호 목사
2014년 01월 17일(금) 14:39
농부들의 '恨의 눈물' 닦아줄 도시교회의 공감ㆍ협력 필요

오늘날 우리 농민들의 가슴 속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한(恨)의 눈물'이요, 원망의 대상까지 뛰어넘는, 가슴 처연하지만 새 세계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는 눈물일 것이다. 특별히 올해는 갑오년으로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나라의 터전이요 기둥인 농업과 농민의 삶이 어리석은 정치세력과 외세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할 때 목숨 걸고 일어나 외쳤던 그 눈물의 함성이 들려오는 해이다.
 
농촌이 지난 세월 어떻게 변해 왔는지 돌이켜보자. 간략하게 말해 50여년 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상부상조의 농촌공동체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농업은 몰락하여 농가경제는 파산하였고, 이농(농가인구 250만 명)과 고령화(60대 이상이 50% 이상)로 영농의 대가 끊겼으며, 농민들의 삶은 상환 불가능한 부채를 짊어진 채 여전히 빈곤 상태에 머물러 있다. 장가 못간 노총각들은 외국 여성들과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평생 농사로 살아온 늙은 농민들은 자녀들이 다 떠난 쓸쓸한 집을 혼자, 혹은 부부가 지키면서 이혼한 자녀들의 자식들을 거두고 있다. 게다가 귀촌인들은 우월감과 농촌문화에 대한 부적응으로 토박이 농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형편 속에서 농민들은 지금 삶의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져있다. 내일을 얘기할 수 없고, 출구를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눈물조차 말라 있다. 어두운 그늘이 넓게 드리워지면서 점차 골짜기의 마른 뼈들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쉽게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 정말 견디다 못해 떨어지는 가랑잎처럼….
 
그럼에도 이런 고난 속에서 울고 있는 농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 눈물을 닦아 줄 사람조차 거의 없다. 교회가 희망이지만 농촌교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도시교회의 공감과 협력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감당할 만한 교회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오늘 농민들의 울음과 눈물은 일순간에 생긴 일이 아니다. 의도적이고 정책적인 소외와 차별에 기인하고 있으며, 알면서도 분홍빛 환상으로 호도하고, 애써 모른 체 외면해온 데에 있다. 소위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수출 전략, 농업 무시의 불가피성에 대한 대중적인 지지,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 의한 전면적인 수입 개방 등이 빚어낸 결과이다. 가장 밑바탕에는 편리하고 풍요롭게 살아보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가 놓여 있다.
 
심각한 것은 지금 농민들의 눈물이 앞으로 전 국민이 흘리게 될 눈물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이다. 흙에서 온 인간이요,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인데 흙과 함께 사는 농민들의 눈에서 이렇듯 눈물을 흘리게 해놓고 자신은 계속 별탈없이 살 수 있을까? 얼마나 지속가능할 것인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인간의 오만이 쌓고 있는 바벨탑은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인간문명의 끝이 어딘지 모르고 사람들은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가장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농민들의 고난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는 오늘의 문명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바벨탑에서 탈출하여 농민들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고 구원받는 길이다.

한경호 목사(횡성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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