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보여주신 새 땅

하나님 보여주신 새 땅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권경숙 선교사
2014년 01월 03일(금) 15:08

"죽은 남편을 만나러 모리타니로 오는 동안 나는 순종을 결단했다. 내가 흔들리면 남편이 뿌린 씨앗도 헛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이가 18개월에 들어가자 다시 배를 타겠다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남편이 여러 말 안해도 남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이 그동안 선원생활을 해서 벌어놓은 돈은 다 떨어져 버렸다. 가난한 나라에서 기름값과 집세, 전기세, 수도세가 부자 나라보다 더 비싸다보니 남편의 돈이 고스란히 교회 운영비로 들어갔다. 남편은 이왕이면 돈을 많이 주는 배를 탈 거라며, 스페인 선적의 새우배를 탔다.
 
남편은 넉달 동안 매월 1만2000 달러씩 집에 가져다 주었고, 난 성경을 구입하기 위해 그해 10월 잠깐 한국에 나왔었다. 그러나 한국에 온 지 닷새 만에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쇳덩어리에 맞아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남편이 한국으로 가는 나에게 했던 부탁이 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양복을 한 벌 입고 싶소." 결혼식 때도 입어보지 못한 양복이었다. 나는 남편의 양복을 사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짠했다. 남들처럼 편하게 살 수도 있는데, 세상적인 기쁨을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채 선교사의 남편으로서 이게 무슨 고생이냐 싶기도 했다.
 
일주일만에 남편을 만났을 때는 차디차게 식어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듯 눈이 열려 있었다. 남편을 만나러 모리타니로 오는 동안 나는 하나님께 순종을 결단했다. 내가 흔들리면 남편이 뿌린 씨앗도 헛된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외항선 선장이었던 남편은 정신적인 지주였다. 남편이라는 지주가 없었다면 아무리 담대할지라도 낯선 땅에서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오는 무슬림 남자들에게 대항할 힘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남편과 함께 거리에 나가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주님은 이 메마른 사막에다 연약한 풀씨 같은 나를 떨어뜨려놓으시지 않고, 남편이란 지원군을 붙여주시어 모든 일을 함께 헤쳐 나가게 만드셨다. 그러나 이제는 나 혼자 남아 새벽마다 가슴을 치며 기도하고 있었다. 사막의 별처럼 오로지 하나님의 이끄심만이 내가 이곳 이방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지표였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뒤 하염없이 노을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남편은 유독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 붉디붉은 노을 속으로 온천지 사방의 땅이 푸르러 가는 게 아닌가. '하나님이 내게 땅을 보여주시는구나’사막의 삶은 지상 어느 곳보다 곤고하다. 사람들도 낙타도 양도 소도 당나귀도 살찐 생명이 없다. "마담이 제 정신이 아닌가봐." 농사를 짓기 위해 3천 평이나 되는 땅을 빌리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농사를 지으려면 물과 기름진 땅과 적당한 그늘이 있어야 한다. 사막에는 그 모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실 사막에도 강이 있다. 우기에만 흐르는 와디가 아니라 사막 아래를 흐르는 깊은 강. 자르디나(농사꾼)란 얼마나 멋진가! 농장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났다. 양파 하나 구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호박, 수박, 양파, 토마토를 키울 생각을 하니 고통 중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모로코나 스페인에서 온 작은 양파 하나는 쌀 1킬로보다도 비쌌다.
 
1997년 12월, 첫 주에 땅을 빌렸다면 둘쨋주부터는 그늘을 만들기 위해서 땅 둘레에다 교인들과 함께 사막 아카시아를 심었다. 셋째주에는 100톤이 들어가는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었다. 이제는 땅을 만들 차례였다. 모래 땅에다 어떻게 농사를 짓겠냐고 다들 내가 어떻게 하는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모래 땅에 1미터 깊이로 구덩이를 파세요."
 
며칠 동안 교인들이 일렬로 줄을 맞춰 거대한 구덩이를 팠다. 아무리 파내려가도 모래 땅은 속도 푸석푸석한 모래였다. 나는 일꾼들을 끌고 낙타 도살장으로 가서는 낙타의 내장 안에 있던 끈끈한 똥을 담아 와 모래 속에 파묻었다. 도살장에 가면 늘 낙타똥이 넘쳐났다. 똥 위에 다시 흙을 덮고 다시 똥을 덮었다. 보란 듯이 나는 똥 반, 흙 반인 땅에다 모종을 심었다.
 
하지만 모종들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바람에 부러지고, 햇빛에 말라죽고. 새들이 날아와서 쪼아 먹고, 솔개가 꺾어놓고 가고, 뱀들이 와서 따먹고, 사막 여우가 와서 흐트러뜨려 놓고, 토끼, 두더지, 고슴도치가 와서 뿌리까지 깨끗하게 파먹었다. 모종 하나를 살려 열매를 맺기까지 들이는 정성은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다. 교인들은 나를 따라 모종을 심을 때도, 물을 줄 때도 한 포기마다 기도를 했다. 밭 여기저기서 아멘아멘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낙타 똥은 물과 기도를 흡수해서 한 나절 동안 모종을 촉촉하게 품어주었다. 한달이 지나자 밭이 푸릇푸릇해지기 시작했고, 석달쯤 지나자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사막 한 가운데 젖과 꿀이 흐르는 초장이 펼쳐지자 나와 교인들은 처음 보는 풍성함에 놀랄 뿐이었다.

본교단 파송 모리타니 권경숙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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