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찾아서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찾아서

[ NGO칼럼 ] NGO칼럼

김수택 목사
2013년 06월 12일(수) 13:20

굳이 위기를 설명하자면, 개인의 위기는 살림살이가 허물어지거나 건강이 무너지거나 부모와 자식이 생이별하는 고난을 말하겠고, 공동체의 위기는 가는 길이 달라 서로 반목하거나 분쟁과 다툼으로 인해 우왕좌왕하는 것이며, 지도자의 무능과 부패로 인하여 갈등과 분열로 미래를 짐작하지 못할 때를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를 스스로 자초한다는 것이다. 지도자와 구성원 사이에서 진정성이 결여되거나, 경영의 내면에서 투명성을 찾기 어렵거나, 공적으로 제시된 방향성이 잘못되었을 때 위기는 반드시 찾아오게 되는 바, 내외부의 요인을 차치하더라도 해결하기 어려운 위기는 스스로의 오류를 불러들인 격이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위기라 말하면서도 걸어온 길에 대하여 세밀한 자기점검이나 반성을 철저히 외면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한국교회를 일러 위기라 한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대체로 몇가지 원인을 꼽는다. 교회의 물량주의는 대형화로 치달아 교회성장이라 치부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수평이동에 의한 성장을 흡족해하고 있고, 교회의 자기사랑은 이웃의 아픔에 대하여 얼굴을 돌린지 오래이며, 교회의 계급주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간지해야 할 고상한 전통을 망각하여 극단의 분열과 분쟁을 초래하였을 뿐아니라, 신학교의 난립으로 격조 높은 목회자의 양육은 물론 목회현장에서 내밀리어 설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모습은 결코 우리들이 기도하던 바는 아닐 것이다.
 
우리들의 교회가 자기만족의 중병에 빠져있음은, 교회 창문밖에서 우리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고백으로 대변된다. 교회 재정의 전횡은 이미 도를 넘었고, 북녘땅의 세습에 날을 세우면서도 교회세습이 해당교회에서는 미습으로 포장되는가 하면, 스러져가는 농어촌교회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여 자본주의적 폐단이 도농간의 갈등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곳 대전시 외각의 어느 교회 목회자의 사례비가 50만원이라면 참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
 
교회는 이 땅에서 누림의 축복을 받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웃의 고난에 함께 참예하라시는 하나님의 분부를 실천하는 공동체이다. 새 교황 프란치스코Ⅰ세의 첫음성이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가난한 교회가 되라는 것을 우리들도 들었다. 작은교회(little church)를 표방하는 많은 교회들이 어두운 동네에서 작은 이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한다. 그들의 삶을 보듬고 함께 가슴을 맞대고 사는 가운데 그리스도 본래의 모습을 증거함은 실로 초대교회의 전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 고난 받는 사람에게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필요한 까닭이 그것이다.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바, 인식확인의 단계를 거쳐 존재확인의 단계 다음에 주어지는 것이 관계 확인의 단계라 한다. 우리들의 교회가 하나님의 관계에 있어 초보적인 인식단계에 머물러서는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거듭나게 할 수 없다. 감성적인 신앙으로는 안 된다. 삼박자 축복으로도 고난의 문제에 해답을 내릴 수 없다.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한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롬 8:18)는 말씀이 우리들의 삶에 더해 주시는 축복에 다름아니다. 가이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인 것이다.
 
진실로 위기를 또 하나의 기회로 여긴다면, 비천에 처할 줄 아는 낮아짐과 부흥과 성장의 축복을 빈 손으로 내어놓고 그 손으로 이 세상과 손을 마주 잡는다면 바로 우리가 작은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던져주신 질문을 상기하게 됨은, 네가 나를 사랑하기는 하느냐? 라는 물음으로 들어서는 아니되겠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를 바라보는 애절한 눈빛을 경험한 사람은 우리들 사랑의 현주소가 어디인가를 분명 깨닫게 될 것이다.

새나루 공동체 대표 김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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