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슬픔도 당신 앞에서는

지울 수 없는 슬픔도 당신 앞에서는

[ 예화사전 ] 예화사전

김운용 교수
2013년 03월 13일(수) 15:04

도쿄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가운데 '아무도 모른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2004년 '올드보이'의 최민식을 제치고 아키라 역을 맡았던 야기라 유야가 사상 최연소 칸느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작품이다.
 
세를 얻기 어려운 도쿄의 한 작은 아파트에 네 남매를 가진 젊은 엄마가 이사 온다. 아이들이 많으면 세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남편은 현재 외국에 있고 12살짜리 장남 아키라와 단 두 식구라고 속이고 세를 얻게 된다. 이사하는 날, 다른 아이들은 여행용 가방에 숨겨서 들여오고, 아이들에게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말 것, 밖에는 절대 문 밖에는 나가지 말 것 등의 규칙을 정한다. 아이들은 학교에도 못가고 집안에서만 갇힌 듯 살아간다. 그렇게 삶을 꾸려가던 어느 날, 엄마는 장남 아키라에게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쪽지와 약간의 돈을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버려진 아이들은 집안에 갇힌 채 겨울을 버티고, 이듬해 여름까지 스스로 살아가야 했다. 그 긴 시간,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늘 집 안에 숨어 지내면서 장남은 동생 셋을 살뜰하게 보살피며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계속한다. 돈은 바닥나고 밀린 고지서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결국엔 집에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밤이면 인근 공원으로 나가서 머리도 감고 빨래도 한다. 동생들을 굶기지 않으려 편의점을 찾아다니며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 김밥과 빵을 구걸하기도 한다. 그렇게 애쓰지만 동생 유키가 세상을 떠나고 땅을 파서 시신을 묻어야 했다.
 
사실 그 아이들은 서로 아빠가 다른 아이들이었다. 아빠에게 버림받고 엄마에게도 버림받은 채 그렇게 갇혀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어른들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의 사람들은 풍요와 환락의 삶을 살지만 아무도 그들을 모른다. 무책임한 엄마는 소식도 끊어지고 돈도 끊어졌으며, 전기와 수도도 끊어진다. 버림받은 아이들은 불 없는 집에서 굶주린 채 깜깜한 밤을 맞이한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그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버림받은 이 아이들'의 기가 막히는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 그건 우리 인생길에서도 종종 경험할 때가 있다. 내 아픈 가슴, 슬픔과 눈물, 외로움과 고독, 고민과 불안,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고 버림받은 상실감에 몸을 떨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고 외치는 사람에게 주님은 아니라고 외친다. 너의 죽을 운명과 상황을 알기에 나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왔으며 너에게 생명과 평화를 주기 위해 지금 십자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외치신다. 외로움, 아픔, 무능력 때문에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그분을 의지하는 것을, 죄에 대한 철저한 좌절 때문에 십자가를 붙드는 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지칭한다. 그래서 이해인 시인은 "지울 수 없는 슬픔도/ 당신 앞엔/ 축복입니다"라고 말한 것일 게다.

김운용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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