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격사유

결격사유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03월 07일(목) 09:39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삼상 1:11~17)
 
모 프로에서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을 그대로 방영해 세간이 시끌시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원래 loser라는 표현은 '비겁하게 하다 포기해 버리고 실패는 남 탓으로 둘러대는 사람'을 지칭하는 아주 나쁜 말입니다. 그런데 영어를 그냥 직역해 '경쟁에서 지는 사람'으로 보고 그 단어를 생각없이 쓴 것이겠지요. 어쨌든 '키 작은 것'을 '결격사유'로 생각하는 어떤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인터넷이 이것으로 뜨거워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나 '결격사유'로 여겨지는 것들은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그 시절에는 '아들이 없는 것'이 바로 결격사유였죠.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에게 두 사람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아내의 이름은 '브닌나'요 또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였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두배로 받았지만 아들이 없어 늘상 브닌나의 구박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 시대는 아들이 없으면 여자는 정말 곤란하던 시대 였습니다. 가문을 이어야 하는데 그 생명의 불씨를 꺼트리는 '가문의 공적(公敵)'이 되고 마는 것은 기본이었고 당연히 상속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50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남편의 사랑과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결격사유'를 가진 인간 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이 '결격사유'와 평생 힘겨운 전쟁을 벌입니다. 남들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다들 말 못할 결격사유를 품에 깊이 묻고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 못할 질병을 자기 탓으로 여기며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결혼 실패를, 또 어떤 사람은 가정 내의 불화를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실력없음을 자신의 결격사유로 여기며 특수 부대의 40kg짜리 완전군장 보다 더 무거운 짐을 감히 풀어내지 못하고 날마다 힘겨운 삶을 이어갑니다. 오늘 한나도 술에 취했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결격사유가 괴로웠나 봅니다. 얼마나 괴로왔으면 하나님 앞에 나와 하는 기도에 그렇게 흐느적거리는 몸짓이 섞여 나왔을까요. 얼마나 괴로왔기에 그런 몸짓이 엘리 제사장의 눈에 훤히 띄었을까요.
 
그런데 오늘 한나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 비범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한나에게도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또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생존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상대는 한나를 심하게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리나 오늘 성경본문은 한나의 한과 분노가 '원수'사이인 브닌나에게 혹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발산된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브닌나의 입장으로 가 봅시다. 그녀에게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은 한나가 아니라 '남편의 마음'입니다. 브닌나는 남편의 사랑을 얻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한나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결격사유', 그러니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임에 대한 대응을 끝냅니다. 번지수가 틀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한나 자신의 '결격사유' 그러니까 무자식 팔자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기가 막히게 '제 정신'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한나에게는 몇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우선 그녀는 남편에게 날마다 강짜를 부리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자신의 마음에 위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이 남자는 자신의 말을 듣는 남자였으니까요. 다음으로 그녀는 그녀의 경쟁자인 브닌나에게 분풀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두 사람이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운다면 남편이 누구의 편을 들지. 분명 그녀의 우세승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신앙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냉철한 방법으로 갑니다. 하나님께 그 마음을, 한을, 원통함을, 분노를 토해냅니다. 그녀의 결격사유는 하나님만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오늘도 괴로워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엉뚱한 나무로 달려가 위를 올려다 보며 밤새 짖는 개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관없는 사람을 원망하고, 상관없는 소유를 원하고, 상관없는 자리를 원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도 이 아침 기도하지 않으면 그렇게 엉뚱한 곳으로 달려갈지도 모릅니다. 가장 냉철한 판단은 하나님께 일단 다 쏟아 내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 고하는 것입니다. 감정까지도. 그러고 나면 엘리 제사장이 했듯이 사람의 손으로 부터도 도움이 시작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결국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의 '결격사유'를 통해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선지자를 아들로 주셨습니다. 한나가 자신의 결격사유에 반응한 그 자세와 그 지혜가 오늘 여러분에게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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