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모르면 우리도 그렇게 된다

사랑을 모르면 우리도 그렇게 된다

[ 예화사전 ] 예화사전

김운용 교수
2013년 02월 22일(금) 14:11

언젠가 만두가게를 운영하는 어떤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손님 중에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한 분이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만두 가게에 나타나고는 했단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다가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곤 했다.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 "부부가 무엇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어쩜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걱정하는 따뜻한 눈빛의 두 노인이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못하신데…."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할머니를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주 동안 그 두 분은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엔 몹시 궁금하고 기다려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오후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 좀 마르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나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너무 기가 막혀서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 아들 집에 사셨단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물었다. 두 분이 싸운 것이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단다.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단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렇게 서로 만난 것인데 할머니가 먼저 돌아 가셨단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받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야 할 절기를 살고 있다. 알지 못하면 우리도 어느 며느리처럼 될 수 있다. 이선명 시인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그렇게 알려준다. "나는 웃고 있는데 / 당신을 잊은 듯 웃고 있는데 / 당신은 울고 있군요/ 몰랐습니다 / 나 때문에 울고 있는 당신을 / 붉은 십자가엔 온통 눈물뿐이라는 것을."

김운용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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