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법

이진법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02월 19일(화) 16:20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출 23:3)
 
고백컨데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 사실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있다"고 하신 말씀,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 만큼 힘들다"고 하신 말씀,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대접하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말씀은 그 모든 것을 뒤집습니다. 물론 무조건 부자편을 들라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편벽되이'라는 말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좀 혼란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편일까요, 아니면 부자의 편일까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사람은 이성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어떤 동물에게도 없는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판단하고 선택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냥 '이성(理性)'이라고 하면 아주 복잡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이성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벽돌은 모두 이진법의 선택들입니다. 인간 이성의 기본 작동법을 가장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 모든 '자동화'의 이면에 있는 프로그래밍들입니다. 커피 자판기의 예를 들어 봅시다. 
 
5백원이 들어오면 불이 들어 오게 (돈이 모자라면 안들어 오니 '이진법'입니다) 되어 있습니다. '아메리카노'를 누르면 커피를 내보내게 (안 누르면 안 내보내니 역시 '이진법'입니다) 되어 있습니다. 다 흘려 보냈으면 불이 꺼지게 (반대의 겨우는 계속 켜져 있게) 되어 있습니다. 역시 이진법입니다. 우리의 '판단'이라는 것은 복잡한 세상만사를 눈 앞의 딱 두개의 선택으로 압축한 후 그것을 선택하는 연속 행위인 것입니다.
 
'흑백 논리'는 아주 나쁜 것으로 치부됩니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우리는 흑백논리의 쓰나미에 질식할 듯 휩쓸립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이지요. 다들 흑백논리가 나쁘다고 하면서도 죽어라고 그걸 반복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런 방식이 '인간이성'의 작동 방식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둘로 압축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족속들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은데도 우리는 '선택'과 '판단'을 위해 언제나 무엇이나 둘로 압축하는 훈련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 앞에 닥친 삶의 위기들을 극복하고 효율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부여받은 이 '도구'는 언제나 무서운 괴물이 될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과 차선을 가리기 위한 '이성'이라는 하인이 '선과 악'을 심판하는 신이 되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몸 만들기에 꽂혀 있는 이들은 사람들을 '군살 있는자와 없는자'로 양분해 봅니다. 기가 막히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음악에 몸바친 사람들은 '음악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양분하고 사람들을 은밀히 정죄합니다.(그런 사람 정말 많습니다) 정치가 만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파워엘리트와 서민'으로 세상을 구분합니다.(그리고 힘없는 자를 무시합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머리 있는 자와 바보로 세상을 쪼개 놓습니다. 물질에, 돈에 목숨건 사람들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세상을 나눕니다. 부자를 선으로 보든, 프로레타리아를 선으로 보든 그 기준이 '물질'이라면 이들은 똑같은 이분법을 행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세상의 이분법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그 어떤 기준도 그것이 '이분법'인 한 정확히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고 신앙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둘로 가르지 않으면 도무지 견디질 못하는 본성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양분법'으로 부터 자유할 수가 있을까요. 그 대답은 아무에게도 해롭지 않은 양분법으로 내 허기진 '양분본능'을 채우는 방법입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어떤 양분법도 들어 오지 않으니까요. '아무도 해롭지 않은 양분법', 그게 뭘까요. 그것은 세상을 '사랑해야 할 사람과 사랑 받아야 할 사람' 둘로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전자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요, 후자는 세상입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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