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거기 남겨두는지 아느냐?"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거기 남겨두는지 아느냐?"

[ 예화사전 ] 예화사전

김운용 교수
2013년 01월 31일(목) 15:33

[예화사전]
 
일전 페이스북에 올라온 북한선교 하시는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남아 있다. 북한 접경에서 밥을 나누는 사역을 하시는 그분은 언젠가 냇물을 건너 식사를 하러 오신 분들을 만난 적이 있었단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강을 건너 온 그들의 옷은 남루했고 옷이 얇아 많이 추워보였다. 신발은 다 떨어져 있었으며 얼굴은 검었다. 그 중 79세인 김 씨 할아버지에게서 일종의 경외감이 느껴졌다. 탈북을 원한다는 이야길 전해 들었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찬송이나 마음 놓고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언제 나오실 수 있으셔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요?" 순간 머릿속에서는 비용을 계산하면서 그들을 안전하게 피하게 할 방법과 이동 경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돌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중국 공안은 어떻게 설득해야 하며, 아이들도 있는데 어느 산을 넘어야 할지…, 그러나 길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자유의 땅에서 맘껏 찬송 한 번 불러보는 게 소원이라는 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때 그 할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가슴을 쳤다. "마지막 결정하기 전 하나님께 물어보아야지요." 그리고 그분은 일어나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가셨다. 한 10여 분이 지났을까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거친 얼굴에는 눈물로 가득했다. "내가 하나님께 물었디요. '저 미국에서 온 목사님이 우릴 돕겠다는데 따라 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디요.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북조선에 남겨두는지 아느냐?'"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목사님,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굶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이랍네다. 기회가 주어지면 남조선에 가서 찬송이나 실컷 부르고 하늘 집에 가고자 했는데 이 땅에 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시니…"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서울로 가시자고 권하는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압네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도 예배당 종도 쳐봤고,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도 해 봤디요. 하지만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시니 자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디 안같소? 압네다. 내도 압네다. 마음 놓고 성경 읽고, 찬송하고, 새벽기도 나가고, 헌금도 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게 얼매나 좋은겐지… 허나 하나님을 앞설 수는 없디요."
 
결국 작별 인사를 할 때 그 분은 강한 어조를 말했다.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요!" 그렇게 헤어진 후 돌아오는 길에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내 계획과 욕망에는 철저히 눈을 감고 주님 뜻과 목적에 사로잡혀 사시다가 이젠 천국에 계신다는 그 김 씨 할아버지 이야길 들으며 문득 이은상 님의 시가 생각난다. "뵈오려 안 뵈는 님 / 눈 감으니 보이시네 / 감아야 보이신다면 / 소경되어지이다." 주신 새해, 소경까지는 아니래도 내 욕심과 욕망에 대해, 분노와 미움에 대해, 아픔과 절망에 대해서도 조금만 눈을 감고 살 수는 없을까?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되어지이다."

김운용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ㆍ예배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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