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

삼각형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01월 31일(목) 14:23
[축복의 발견]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출 23:2)
 
수 천 마리의 소들이 미친듯이 뛰어가고 있습니다. 소들은 서로에게 둘러싸여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모르기는 이 소들을 몰고가는 좀 더 힘센 리더 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른 소들보다 힘이 조금 더 세고, 뿔이 조금 날카로울 뿐이지 계곡 아래 쪽에 절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까맣게 모르기는 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약한 소들은 우두머리를 믿고 가고 우두머리도 모두 자신을 따르는 걸 보니 괜찮을 거라 본능적으로 믿습니다. 이 때 갑자기 한 마리의 소가 제자리에 멈추어 섭니다. 뒤따르던 소들이 그의 등에 부딪히며 흙먼지가 피어 오릅니다. 멈춘 그 소가 만들어 좋은 흐름의 진공속으로 소수의 소들이 들어와 멈추어 서더니 서서히 뒤를 돌아 봅니다. 처음 멈춘 그 소는 따라오던 소들에 들이 받혀 제 자리에 턱 주저 앉습니다. 자신이 만든 공간에 들어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소들을 바라보며 그는 눈짓으로 그 길로 가지 마라 합니다. 순간 뒤에서 오는 날카로운 뿔에 받혀 멈춘 소는 쓰러집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쓰러져 피흘린 그 자리를 뒤에서 달려 오던 소들이 피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삼각형의 빈자리는 그가 쓰러진 자리를 꼭지점으로 해서 점점 넓어져 갑니다. 그 조용한 삼각형으로 들어오는 소들이 많아지는 만큼 뒤돌아 서는 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들입니다. 한 사람은 못해도 여럿이 하면 어떤 잔인한 짓도 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2차 대전 때 포로의 목을 자르던 일본 군인들은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누가 더 깨끗이 목을 자르는가 경쟁했다'고 증언 하고 있습니다. 개인으로서는 꿈꾸지 못할 짓입니다. 그렇게 독일 군인들은 유태인 7백만명을 눈 깜짝하지 않고 죽였습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여럿이서 한 아이를 학대하고 괴롭혀서 죽음으로 몰아 넣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속한 그룹 전체가 한다면, 자신의 회사 전체가 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국가 전체가 아무런 이견 없이 하고 있는 일이라면 이 소 떼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아무도 소 떼의 방향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저 그 방향으로 가지 않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혹은 역도로 몰아 죽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녹록치가 않습니다. 내가 속한 다수가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 혹 알았다고 해도 소 떼를 거스르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 두 번째 문제입니다. 인간의 사회에서 다수가 가는 길을 거스르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다수'는 그렇게 무섭습니다. 히틀러라는 대장 소가 몰고 가는 그 파멸의 길을 8천만명 이나 되는 독일인들이 아무도 막지 못한 것을 보십시요. 나치 저항의 상징인 본 회퍼 목사를 포함, 그 때 뒤돌아 선 소들은 모두 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피는 헛되지 않습니다. '삼각형'이 생긴 것입니다.
 
한 마리가 가던 길을 멈추면 그의 앞에 가던 수십마리가 그가 만든 삼각의 공간 속에서 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뒤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하나씩 자신의 자리에서 뒤돌아서면 다시 수 없는 소들이 멸망의 질주에서 해방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우리가 속한 곳에서 우리는 멈추어 서고, 뒤돌아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하나하나 혼자서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나 약합니다.
 
그런데 2천년 전 유대 땅에서 우리를 위해 최초의 삼각형을 만드신 분이 있습니다. 그가 그린 삼각형은 별 볼일 없는 사람 열 둘을 담았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쉼을 얻고 죽음의 질주가 가져올 운명을 알아차린 그의 제자들은 세계로 나아가 또 다시 작은 삼각형들을 만들며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은 그렇게 다가왔고 저 또한 그 삼각형 속에서 세상의 질주가 가는 길의 운명을 보았습니다. 오늘 달려가던 길에서 멈춥시다. 그 분의 삶을 닮아 멋모르는 죽음의 질주에서 친구들을 몇 명이라도 구합시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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