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불안한가

우리는 왜 불안한가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27일(목) 09:58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정말 오랬동안 잡히지 않는 탈옥수들을 추격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한적한 시골이나 외국에서 신분을 숨기고 경찰의 추격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지를 사실감 있게 다룬 프로그램인데 그 도망의 기간이 어떤 이는 3년, 어떤 이는 15년, 심지어 20년이 넘게 이름을 바꾸고 얼굴을 성형하고 위장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에 이 다큐멘터리는 언제나 두 가지 공통된 결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이 결국은 잡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지막에 잡힌 그들이 말하는 소감이 도망 기간과 관계없이 같다는 것입니다. 수갑을 찬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쉽다'가 아니라 뜻밖에도 '후련하다'였습니다.

몇십년을 도망 다니며 심지어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정착까지 해버린 사람들이 다시 감옥에 가게 된 답답한 마당에 후련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요. 사람은 정말 어떤 존재인가요. 그 열쇄는 '거짓없음'에 있습니다. 행복은 '편안'이 아니라 '평안'에서 비롯되는데 사람의 평안은 산속에 들어 간다고, 목이 터져라 기도를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면만 벗으면' 바로 찾아 오는 간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망자들을 언제나 불안하게 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경찰의 추적이지만 내면 깊은 곳의 불안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거짓말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얼마전 10년 전 공모로 사람을 살해한 한 사람이 암에 걸려 죽기 직전 경찰에 그 일을 신고해 공범들이 모두 잡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무덤에 가기 전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불어야 후련한 존재인 것입니다. 오랫동안 쌓인 거짓이 얼마나 컸으면 평생 다시 감옥에 있게 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영원히 살인자로 역사에 남게된 순간에도 '후련함'을 말하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인간의 불안인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혹은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정치 상황에서, 또 정말 믿을 수 없는 내 친구나 동료나 부하 직원에게서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모든 똑같은 상황에서도 언제나 평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 모두는 다 한 사람 쯤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불안이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우리의 불안은 '우리의 거짓'에서만 옵니다. 수입이 불안한 것은 '나는 이정도 버는 사람'이라고 주위에 거짓말을 해놓았기 때문이고, 자리가 불안한 것도 '난 항상 인정 받는 인재'라고 나에게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될까 불안한 것은 '저 놈은 재능이 없다'라고 질투로 거짓증거 했기 때문이고, 인생 전체가 불안한 것은 '하나님 없는 세상에 희망이 있다'라고 나 자신에게 우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안은 우리의 '거짓 증거'에서 옵니다. 내가 얼마나 엉망인지 친구 앞에 순순히 드러내고, 친구가 뭘 잘 하는지 선선히 인정하고, 세상이 사실 불완전해서 하나님의 개입을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불안이 없습니다. 평안이 깃듭니다. 오늘 당신은 불안을 해소 하겠다고 돈을 더 벌려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더 비싼 가방을 들려 하지 않습니까. 오른쪽 다리가 간지러운데 20년째 왼쪽 다리만 피나게 긁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나에 대한, 친구에 대한, 세상에 대한 거짓말을 때려치울 때입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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