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방법

기억의 방법

[ NGO칼럼 ] 기억의 방법

최수철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17일(월) 13:57

[NGO칼럼]

이번 제18대선은 다양한 이슈가 있었지만 한편으로 이번 대선은 기억에 대한 전쟁으로 정리될 수 있다. 여야의 유력한 후보들이 공교롭게도 전임 대통령들과 관련이 많은 분들이고, 결국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누가 국민적인 동의를 얻었느냐가 대선 결과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과거를 규정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객관적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왜곡되기 쉬운 말랑말랑한 성질의 것이다.
 
미국 에모리 대학의 심리학자 울릭 네이서는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한 다음날 아침 44명의 학생을 인터뷰했다. 단순한 기억을 요구하는 질문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맨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는 같은 질문을 2년 반 후에 다시 물었다. 그러자 원래의 것과 똑같이 대답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대답 가운데 정확히 3분의 1이 '매우 부정확했다'. 학생들은 기억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무시했다. 다수의 학생들이 최근의 잘못된 버전이 정말로 옳다고 주장했다. 기억이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실험이다. 이 실험은 기억에도 일종의 경향성이 존재하고, 우리의 기억은 주관적으로 편집된 기억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역사학자 E.H. 카아도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인 것은 아니며,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 사이의 구별은 엄격한 것도 아니고,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어떠한 사실도 일단 그것의 사회적 중요성이 밝혀지면 역사적 사실의 지위로, 말하자면 승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취사선택된 기억의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기억은 기억 '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 '하는 것'이 된다. 일정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억의 대상을 선택하고 기억의 방법을 정하는 일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다. 기억은 그래서 우리 각자의 정체성을 만들며, 우리는 기억을 통해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기억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며, 누구나 일종의 기억의 길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땠을까? 그가 기억했던, 그만의 기억의 길은 무엇일까?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는 주로 가난하고 병들었으며,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만났다. 예수님은 그냥 우연히 그들을 만나게 되신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거라사의 이름 없는 한 광인을 일찍부터 기억하고 계셨다고 생각한다. 안식일에 회당 한 가운데로 부르신 손이 불편한 장애인도,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도, 삶 자체가 힘겨웠던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은 기억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작은 자들에 대한 그의 기억은 구체적이었고, 그 기억이 사역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모든 소외된 자들을 기억하셨던 것이다. 당신과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지난 추석에 우리 단체에서는 우리 사회가 기억할 필요가 있는 몇몇 분들과 단체에 작은 선물을 드린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으나 곧 잊혀진 분들이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분은 연평도 포격 희생자 유족 분들이었다. 그저 작은 선물과 편지를 드린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거듭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거듭된 감사의 이유는 결국 기억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누군가의 기억이 그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기억의 길은 예수님이 걸으신 기억의 길이다.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이 사회에서 기억해야 할 우리 각자의 대상이 결정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꼭 기억해야 할 대상은 높은 지위와 권력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하게도 더 낮은 곳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기억의 노력을 기울여할 때이다.
 
날이 춥다. 어떤 사람들이 더 추워지면 안 되는지 기억해 볼 일이다. 송전탑 높은 곳에, 시청 앞 광장에, 어떤 숨죽인 곳에 누군가 있고 그들을 기억해 내기 위한 노력은 우리 몫이다.

최수철목사 / 한국교회봉사단 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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