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것들은…

저런 것들은…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10일(월) 10:45

[축복의 발견]

살인하지 말라(출 20:7)
 
몇 년전 있었던 군부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남동생을 잃은 누나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포스터에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배우들의 코믹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그냥 웃고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그 누나는 통곡을 하면 극장을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군 전투기의 기관총에 군인이 수십발을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나왔던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동막골'이었습니다. 그녀의 동생도 정확히 그런 죽음을 맞이 했던 것이 바로 한 두달 전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을 날마나 봅니다. 전장의 군인들은 총을 맞아 픽픽 쓰러지고 범죄드라마의 피해자들은 몽둥이를 맞고 죽어갑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런 것을 보고 며칠씩 잠을 못잔다든지, 혹은 토한다든지 아니면 극장을 뛰쳐 나간다든지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폭력적인 장면에 어릴 때부터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런 폭력적인 죽음들이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식구 중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간단히 자살을 언급하는 장면에서도 가슴에 벽돌을 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것이고 내가 친구를 왕따시켜 친구가 죽었다면 관련 뉴스 한 마디에도 가슴이 덜컹 하고 내려앉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그리고 살인을 이렇게도 일상적으로, 눈도 깜짝하지 않고 대하는 것은 우리와 살인과의 '무관계성'을 확신하기 때문인데 성경은 그것에 대해 '천만의 말씀'이라고 대답합니다. 살인이라는 끔찍한 사건의 원인을 추적하면 꼭 같은 골목에서 세상의 모든 살인이 만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저런 것들은 없어져야 해'라고 하는 마음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 마다 살인하는 자니'라는 말씀은 절대로 과장법이 아닙니다. 살인은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단 폭력의 누적 상승에서 오고, 최초의 폭력은 분노에서 오고, 분노는 미움에서 오며, 그 미움의 정체는 '저런 것들은 없어야 한다'는 우리 마음 속의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유태인 7백만 명을 죽인 살인자가 누구입니까. 간수들입니까. 아니, 그들은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합니다. 그렇지요. 다들 징집된 평범한 옆집 오빠들 이었으니까요.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장교들도 항변합니다. 자신들은 현장에서 총을 쏘지 않았다고. 고위 장성들도 무죄를 주장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히틀러에 충성하느라 그랬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히틀러 역시 '유대인들의 옷을 죄다 벗겨 가스실에서 죽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살인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7백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비참하게 살해 당했습니다. 살인범은 누구입니까. 당시 독일에 만연해 있던 '유대인 혐오주의'가 범인입니다. 좀 쉽게 말하겠습니다. 당시 독일 사람 대부분이 가슴에 품고 있던 '유대인, 저런 것들은 없애야 돼'라는 생각이 희대의 연쇄 학살을 부른 장본인입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살인자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먼 이야기를 할 것도 없습니다. 광주를 보십시오.
 
당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오늘 당신의 마음에 '저런 것들은…'하는 생각이 있습니까. 결단코, 결단코, 결단코 품지 말아야 할 생각입니다. 지금 당신은 누군가를 이미 죽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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