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8일

12월3~8일

[ 가정예배 ] 12월3~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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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9일(목) 10:14

[가정예배]

월-성령님이 주시는 꿈
본문;행 2:16~17
찬송가;208장
 
필자의 목회철학은 첫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성도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주의 종으로서의 궁극적인 사명은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며 구원 받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예배자로 세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역시나 성도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세상의 죄와 가난, 질병에 눌리고 포로된 자들을 자유케 하시고, 더 나아가 영원한 생명으로 풍성한 은혜를 주심이었듯,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과 치유의 기쁨을 주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다. 그 꿈과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몸된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 위에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셨다.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이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성도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부흥하는 태버너클(Tabernacle)교회를 담임하는 짐 삼발라 목사는 '성령으로 다시 시작하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세상의 희망은 교회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교회는 한낱 과거의 쓸모없는 전통이나 친목회 따위로 변질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교회공동체는 살아 역사하고, 교회를 통해 참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충만한 역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구약(욜 2:18)의 예언대로 말세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성령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신다고 나와 있다. 모든 육체(자녀, 젊은이, 늙은이)에, 심지어 남녀 구분 없이 모두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나라의 꿈과 희망을 온 세상에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불신자는 꿈을 이야기할 때 성공과 출세를 구하지만, 이는 자기 욕망이지 진정한 꿈은 아니다. 성도의 꿈은 나로 인해 이 세상에 보다 가난한 자, 죄인, 약자, 소외 된 영혼, 병든 영혼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으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 곧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기에 많은 고난도 받았지만 그 하나님의 꿈이 있기에, 결국은 애굽의 노예에서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때 요셉에게 당신의 꿈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는 세상의 영화나 출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로 인해 만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의 꿈(사명)을 보여주시며 많은 영혼을 생명으로 인도하길 원하신다. 교회는 이렇듯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꿈을 가질 때 같은 마음과 비전으로 하나 되는 건강한 성령의 공동체가 될 것이고, 성도들의 믿음이 회복되고 부흥하는 교회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갈수록 어두워져 가는 세상에, 먼저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을 사모하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보게 하소서. 이 땅에 고단한 인생을 사는 모든 영혼에 생명의 기쁨과 희망의 빛이 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태식목사 / 가나안교회


화-예수님만을 본 사람 
본문: 누가복음 7:36-42
찬송: 354장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구든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설령 그 주위에 다른 것들이 있어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내가 원하는 그것만 보인다. 내가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내 눈에 보이는건 오직 그 사람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눈이 바로 이런 눈이다.
 
오늘 우리가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을 보고 있다. 본문 37절에서 죄 지은 여자라고 소개된 사람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 바리새인은 잔치를 열었다. 초대받으신 예수님께서 이 집에 계셨다. 그리고 그 근처에 사는 유지들이 이집에 모였다. 유대인의 전례대로 모든 사람이 서로 볼 수 있는 마당 한 가운데 자리가 마련됐다.
 
그런데 순간 흥겹던 저녁 잔치자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초대받지 않은 한 사람 때문이다. 이 여인은 그 근방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창녀였다. 죄지은 여인이 바리새인의 집에 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냉랭하고 험악한 분위기가 됐다. 아무 말없이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이 여인에게 멸시와 조롱을 담고 살기마저 느껴지는 차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평상시라면 이 여인은 자리에 주저앉거나 머리를 싸매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저주의 폭언도 차가운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날 여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 여인은 오직 한 사람만을 보았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그 한 분만을 보았다. 바로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예수님께로 나아갔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명기 5장 32절에서 "그런즉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아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예수님만 보는 사람만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된다.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에서 뛰어내린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걸었다. 그러나 눈을 돌려 풍랑으로 인한 파도를 보는 순간 물 속에 빠지고 만다. 주님만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겪게 되는 일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가거나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이 여인같이 누가 뭐라든 주님만 바라봤듯이 우리 생활에 어떤 일이 생기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이사야40:31)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바로 그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자주 치우치고 뒤로 물러나려는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이제 세상의 욕심과 욕망 괘락에는 눈을 감고 오직 예수님만을 보고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경근목사 / 행복한교회


수-성탄절의 첫 번째 촛불이 켜지다, 만남
본문: 마2:9-10
찬송가: 86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중음악 50년사에 베스트 40위에 오른 작품은 노사연의 '만남'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냐…영원을 태우리…사랑해 너를 사랑해." 만남은 사랑을 동반한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에로스적인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사랑이나, 필레오처럼 우정을 나누는 동행의 사랑, 또는 아가페처럼 절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의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랑을 채워가고자 여러 종류의 만남을 통해 사랑을 채워가려고 시도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만남을 고대하는 것일까?
 
12월 초가 되면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교회는 성탄절 장식으로 형형색색 그 찬연한 빛을 발한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바로 아기 예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이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동반되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사랑, 즉 아가페 사랑의 유익을 얻기 위해 고대하며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영혼이 채워지고 내면이 풍요로워지고 미래의 언약적 소망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실망이 없고 격려가 있다. 이 사랑은 빼앗김이 없고 더해짐이 있다. 이 사랑은 후회가 없고 행복이 있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는 성탄절 기간중에 만남의 사건이 경험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탄절은 예수님과 encounter(인격적인 만남)되는 절기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동방박사들처럼 반드시 2012년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 2012년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동방박사의 길을 떠나야 한다.
 
동방박사들은 2절의 '그의 별', 9절에 '그 별', 즉 그분의 별을 보고 따라나선 것이다. 여기서 '그'는 그 어떤 별(a star)이 아니고 오직 유일한 별, 진리의 별을 상징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민 24:17)에서 지칭한 그 별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하나님의 계시별이고 말씀의 별인 것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별, 그 어떤 별을 추구한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그 별, 말씀의 별, 진리의 별을 보고 따라 나섰다. 그들의 인생은 하늘의 기쁨을 얻었다.
 
2012년의 한국과 한국교회의 밤하늘은 어둡다. 이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붙잡고 그 별빛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 말씀이 나에게 소망이 됨을 넘어서 사건이 될 때까지 우리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러 떠나야 하는 것이다. 갈망하고 사모하면서 기도하고 성경을 붙잡자. 별을 바라보듯이 말씀을 읽고 말씀 속으로 들어가자.
 
마침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2013년의 주님의 약속을 받아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성탄절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만나러 오신 주님! 2012년 성탄절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동방박사의 기쁨과 감격이 나의 사건이 되는 계절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영익목사 / 성문교회


목-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리라
본문 :요한복음 3:22-30
찬송가 :95장
 
지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절기이다.
 
이때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왔지만 예수님이 자기보다 먼저 계신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줄 알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 본문 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다. 당시 세례요한은 최고의 선지자였으며 수많은 제자들이 따랐다. 폭군 헤롯왕조차도 두려워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은 자신의 명성이 작아지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 또한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언제든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세우고 우리 자신은 조연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흥하게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세례요한의 모습이 본문에 나타난다. 그는 예수님을 역사의 무대 중심에 세우고 자신은 서서히 무대 뒤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두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첫째는, 예수님을 조연이 되게 하고 자신은 주연의 자리에 세우는 이들이다. 둘째는, 예수님을 주연으로 세우고, 자신은 조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이다.
 
세계적인 기업 듀퐁사나 제너럴일렉트릭에서 임원을 뽑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있다. 그로인하여 다른 부하들이 발전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리더인가를 가장 먼저 본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남을 짓밟는 사람은 절대로 임원으로 승진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흥하게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고 인정받는다.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인가?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하기 싫은 일 하나 더 하는 것이다. 당신은 흥하고 나는 쇠하리라는 마음으로 사는 가정이다.
 
좋은 상사가 누구인가?
 
직원들을 아끼고 잘 되게 하고, 마음 편하게 해주는 상사이다. 나는 쇠하고 당신은 흥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상사이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나? 우리를 영원히 흥하게 하려고 오셨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단번에 쇠하게 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가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례요한처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부요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종찬목사 / 수원성북교회


금-내게 있는것
본문: 사도행전 3:1-10
찬송가: 91장
 
나에게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족이 있고,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입을 수 있는 옷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이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잡다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복잡하고 많은 일 속에서 필요한 것이 많고 그래서 없는 것도 많다. 많은 것을 갖추고 살면서도 갖추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며 없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이며 내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 무엇인가? 난 왜 그것이 꼭 필요한가? 내 삶에서 나는 무엇을 향해 필요를 채워 가고 있는가? 여러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본문에서는 이 복잡하고 바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해주고 있다.
 
첫째, 단순 명료하게 사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미문에 앉은 걸인에게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는 것은 오직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그 분 뿐이다. 그들의 이념, 지식, 삶의 경험, 물질이 아니라 오직 나사렛 예수만이 그들의 전부였다. 그들의 전부를 주저하지 않고 걸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더니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서 걷고 뛰었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명료하게 살며 그 전부를 전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 사도바울도 그의 지식 가문 명예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로만 살아가며 복음전파에 전부를 바칠 때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능력과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채웠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빈궁에도 부요에도 처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로만 살기 때문이었다.
 
두번째는 그의 전부를 주었다. 6절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주었을 것이고 충고도 했을 것이고 비난도 했을 것이다. 미문의 걸인은 그 무엇에도 동요되지 않았다. 자신에게만 집착하고 있는 그였다. 나사렛 예수에는 관심조차도 없는 그가 어떻게 은도 금도 아닌 예수를 받아들였을까?
 
그것은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의 전부를 부인하고 예수만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히 알고 그분을 전적으로 믿으니 그분의 마음으로 전심을 다해 전했을 때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확실한 믿음과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나를 부인하고 내게 있는 것은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해야한다. 전심을 다해 나사렛 예수그리스도를 내 이웃들에게 전하는 대림절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복잡하고 분주한 세상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오직 예수로만 살아갈 수 있고 예수만을 전하는 저희들이 되어서 예수로 통해 행복하고 예수만이 자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준연목사 / 고평교회


토-손해 본 신앙생활
본문: 마태복음 12:43-45
찬송가: 445장
 
2012년 마지막 달 12월이다. 우리 마음과 삶 속을 정리해야 할 때이다. 잘못된 것을 몰아내고 잘된 것과 좋은 것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그것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이다. 믿음과 영적인 면에서 보면 한 해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결국은 손해를 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 중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거할 곳을 찾지 못하고 본래 있던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안이 비고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 선뜻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니 이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나빠졌다"라고 하셨다. 신앙생활을 잘하면 귀신과 같은 악한 것들을 몰아내고 깨끗한 믿음으로 가득 차야 한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잘못하여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악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지 아니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한 가룟 유다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더 나빠진, 즉 더러운 귀신들에게 사로잡힌 예를 살펴보자.
 
첫째는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먹는 경우이다. 예수님과 믿음과 자기의 교회직분을 팔아 이득을 챙기려는, 무엇이 값진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둘째는 교회 직분이 높아지거나 믿음생활이 깊어질수록 더욱 교만해지는 경우이다. 교만과 독선은 신앙의 요소나 믿음의 덕목에 없는 것이며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물리치신다고 했다.
 
셋째는 죄의 용서를 받으면서 죄를 짓고 또 회개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죄를 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굳어진 마음의 소유자이다.
 
넷째는 명예와 감투에 눈이 어두워져서 그것을 얻기 위해 교회, 타인 등을 이용하여 높이 올라가려는 사람들이다.
 
다섯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 하지 않으며 그분의 뜻을 여쭈어 보지도 않고 자기 뜻이나 욕심과 마음의 계획대로 가려는 사람들이다.
 
여섯째는 자신이 종이나 일꾼인 줄 모르고 자기가 주인인 양 혹은 왕처럼 군림하며 지배하려고 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을 종처럼 부려먹으려는 태도나 꼭 필요할 때 종들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다.
 
일곱째는 영생하는 천국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밀쳐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노력과 지혜로 지상낙원(파라다이스)을 꿈꾸고 건설하려는 사람들이다.
 
이상의 일곱 가지 예에 해당하는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할 것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참된 신앙의 열매를 맺었는지 혹은 가라지 같은 잘못된 것들을 키워 처음 믿음을 상실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언제 사탄적인 요소들이 우리에게 들어와 농락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무지한 존재들입니다. 사탄의 역사를 깨달아 물리치며 하나님의 선한 백성과 도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용목사 / 신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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