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피로사회

한국교회와 피로사회

[ NGO칼럼 ] 한국교회와 피로사회

최수철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19일(월) 10:01

[NGO칼럼]

한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책 제목에 '긍정'이 들어간 책을 검색해 보았다. 국내도서 3백52권, 외국도서 65권이 검색되었다. 굉장히 많은 숫자이다. 우리 사회가 무엇인가를 긍정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생각했다. '긍정'에 대한 책을 검색해 볼 생각이 든 것은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책 '피로사회'를 읽은 까닭이다. '피로사회'는 현대 사회가 성과지향적인 사회이며,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의 과잉으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를 결박하는 사회라고 정의한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병리적 현상의 가장 큰 특징은 우울증인데 지나친 성과주의와 긍정의 과잉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가고, 이러한 현상이 우울증의 사회적 원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현대 사회 속에서 자유의 과잉은 보다 성과지향적인 사회의 흐름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이르지 못한 개인들에게 우리 사회는 불안하고 건강하지 못한 피로사회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한병철의 이러한 지적은 독일 학계를 비롯한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피로사회는 독일의 많은 언론과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일종의 현상이 되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상황에 피로사회를 비추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교회의 지나친 성과주의와 성공주의는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든다. 성공의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만족시킬 수 없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개척교회와 소형교회만 불안한 것은 아니다. 대형교회도 성장세가 꺾일까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총동원된다. 그러다가 최근 서울 노원구의 한 교회처럼 전도지에 남,녀 청년들의 얼굴을 게시하고 '여자친구 있어? 소개팅 해볼래?', '남자친구 있어? 소개팅 해볼래?'라고 전도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비난을 면치 못한 전도방법이지만 단순히 전도지의 문화적 호소방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그 전도지를 제작하게 되는 근본 동기 즉, 일종의 절박한 불안함에 주목한다. 그 안에 성공을 향한 불안함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 불안함을 이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무리수가 된다. 무리수가 쌓이면 세상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대안은 있을까? 찾아보면 있다. 서울역 앞 동자동의 쪽방촌 주민 같은 분들이 우리가 배울 대상이다. 동자동 쪽방주민들은 열악한 삶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돕기 위해 공제조합을 만들고 스스로를 지원하고 자립해 나가는 감동적인 실험을 지속해왔다. 동자동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이 중요한 이유는 외부활동가나 복지기관이 개입하기보다 주민 스스로가 이 일들을 이루어 나가기 때문이다. 조합은 약1천세대의 쪽방촌 주민들 중 약 3백명이 가입되어 지난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월 5천원에서 1만원씩 조합출자금을 납부하는 분들을 통해 현재까지 출자금은 약 5천 만원이 모였다. 그래서 동자동 쪽방주민들은 부모님이나 형제가 방문했을 때 저녁 값으로 5만원을 조합에서 빌릴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몸이 아프면 병원비로 3만원을 빌리기도 한다. 겨울에 풀빵장사 시작하는 리어카 빌리는 돈 50만원도 대출이 가능하다. 높은 은행 문턱에 다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 돕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현재까지 상환기한을 넘겨서라도 빌린 돈을 갚아나가는 주민을 합하면 상환율은 거의 100%에 다다른다.

필자가 속한 단체는 이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만나면서 느낀 점은 이 분들이 오랜 삶의 경륜으로 '조금씩 작게 천천히 오래' 일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형님'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이 분들과의 만남이 지속되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디아코니아 영역에서도 어느새 어떤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불문율이 강조되었고, 우리 스스로가 그 불안함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우리는 이분들과 '조금씩 작게 천천히 오랫동안 함께' 일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풀빵 리어카 한, 두 대 정도 빌려서 시작해보는 것이다. 이 작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단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만나고 서로에게 귀중한 '사람'으로 남겨지기를 기대한다. 성과를 남기는 것보다 사람을 남기는 것이 더 좋다. 그것이 예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 방법이기 때문이다.


최수철목사 /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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