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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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예배 ] 11/19~11/24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15일(목) 13:22

월-여호와께 감사하라
본문: 시 136:1-26
찬송가: 587장
 
일본의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글을 남겼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그것은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믿어지지 않는 불신앙으로,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막힌 귀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빠진 채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저주 같은 삶이라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소위 '감사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감사라는 말이 26절마다 나타난다. 그런데 이 감사라는 말이 모두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께 향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기에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노래하고 있는가?
 
첫째, 선하시고 인자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한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시며, 선하시며 인자하신 분이시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에 대해 언제나 선으로 역사한다(롬 8:28). 때때로 우리 삶에 힘들고 아픈 일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진정 힘들고 아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기쁨과 축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둘째, 우주만물의 주가 되시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한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삶의 현장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환경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일터, 사회, 그리고 교회까지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내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기에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셋째, 구원과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강한 손과 펴신 팔로 그의 백성들을 구출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길을 통과하여, 모든 장애물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마치 광야길과 같아서 때때로 험난한 장애물을 만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종국에는 우리가 승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기에 구원과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넷째, 세밀하게 보살피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비천한 데서 건지시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 식물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즉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고 그 필요들을 채워주시는 너무나 멋진 분이시기에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금년 한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어떻게 다가오셨는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자. 그리고 여호와께 감사하자. 감사는 성도의 아름다운 열매이다.
 
<오늘의 기도>
감사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금년 한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상영목사 / 천보교회


화-믿음으로 꿈을 성취하라
본문: 여호수아 14:6-15
찬송가 : 546장
 
KFC는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약 3만개의 매장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을 만든 커넬 샌더스만큼 많은 실패와 역경에 직면했던 사람도 드물다. 그는 전 재산을 탕진하고 사랑하는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충격으로 정신병을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듣고 "맞아, 주님이 지켜주시는데 뭘 걱정한단 말인가!"라며 용기를 얻어 정신병원에서 나와 자그만 트럭에 포장마차를 열었다. 기도하면서 치킨 양념을 만들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1천9번 퇴짜를 맞고 1천10번째에 첫 체인점 계약을 따내게 되었다. 그때 나이가 68세였다. 은퇴 후 그는 온 미국과 캐나다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간증하는 삶을 살았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하나의 공부랍니다. 현실을 보지 말고 멋진 미래를 꿈꾸세요.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세요. 인생 최대의 난관 뒤에는 인생 최대의 성공이 숨어 있답니다."
 
왜 우리 인생에 꿈이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기도제목이 있어야 할까? 그것이 없으면 방황하게 되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일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꿈과 희망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성패는 어떤 의미에서는 능력의 차이보다 집중력의 차이로 결정된다. 집중력은 꿈이 있을 때에 생긴다. 오늘 본문의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정복하는 꿈이 있었다. 믿음으로 꿈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환경과 여건을 초월한다.
 
갈렙은 이스라엘 12지파에도 들지 못하는 자신의 출신과 혈통을 뛰어 넘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고 이루었다. 다윗은 시골 목동 출신이었지만 최고의 성군이 되었고, 지금도 이스라엘 국기 한 가운데는 6각형의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다.
 
둘째,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며 준비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려면 꿈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갈렙은 40세 때에 받은 하나님의 꿈을 위하여 45년을 일관되게 준비했다. 그는 85세였지만 강건하여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이루어질 줄 믿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며 준비했다.
 
셋째,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당시 헤브론은 크고 견고한 성읍이어서 공격하기 어려웠고, 아낙 사람들은 거인족속이었다. 하지만 도전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그 땅은 갈렙과 그 후손의 땅이 되었다. 하나님의 보호와 복을 확신할 때 도전하여 승리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때로 실수하고 넘어져도 그 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사랑하신다. 어려움 없는 완벽한 인생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가운데 철저한 자기관리와 환경을 초월한 갈렙처럼 도전하여 마침내 승리의 주인공들이 되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현재의 고난 뒤에 장차 주어질 찬란한 승리를 바라보면 소망가운데 도전하여 마침내 꿈을 성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성득목사 / 동산교회


수-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랑
본문: 요한복음2:1-10
찬송가 : 552장
 
믿음은 소유한 자의 것이고 기적도, 역사도 그들의 것이다.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은 그 믿음에 이끌려 심부름을 할 뿐이고 그분께 있는 것을 나누는 통로일 뿐이다. 우리는 떼어놓지 못하는 인정에 끌려다니며 살아 갈 때가 있다. 하나님께 자녀들을 드릴 때 하나님의 역사가 빛을 발하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표적이 드러날텐데, 나의 것으로 가지고 있으려고 하니 그들이 빛을 잃는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놓았듯 영혼을 구하라고 떠나 보냈듯, 우리도 인정을 떠나 보내고, 애착하는 모든 것을 떠나 보내야 한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마리아의 기쁨과 희망은 예수님으로 부터 왔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마리아는 신바람이 났다. 내 아들이 제자들과 왔다고 어서 음식을 가져다 주라고 주방을 들락거리며 음식을 나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이다. 예수는 마리아의 삶의 기쁨이고 희망이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믿음의 청을 드린다.
 
잔치 중 포도주 항아리가 비고 말았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가 계신 이곳은 축복이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오신 잔치집에 포도주가 없어 흥이 깨짐은 말도 안돼는 일이지!'라는 마음으로 예수께 청을 한다. "포도주가 떨어졌단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닌 권세있는 자의 음성으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답한다. 냉정한 거절을 들으면서 예수가 이미 아들이 아닌 그리스도이심을,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차린다.
 
마리아의 믿음의 청은 역사를 일으켰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가서 "예수가 너희에게 무슨말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이른다. 마리아는 믿었다 예수는 절대로 이 상황을 난감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내 아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메시야임을 확신했다. 예수님이 결단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 물 같은 세상을 맛있는 포도주 같은 세상으로 만들리라. 항아리에 물을 체워라." "이제 떠서 연회장에 갖다 줘라." 포도주를 맛본 이들은 "잔치가 거의 끝나가는 데도 이렇게 좋은 포도주가 남아있단 말인가"라며 감탄을 자아냈다. 마리아는 "잘했다 내 아들. 이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당신의 나라이고 당신의 가엾은 백성들입니다"라며 흐뭇했을 것이다. 제자들 또한 그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떠나 보낸다.
 
육신의 어머니의 청을 거절 못하시는 주님, 잔치집의 흥을 깨지 못하시는 주님,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그런 예수님을 마리아는 온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떠나보낸다. 예수님은 물처럼 맛없는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포도주 같은 맛있는 즐겁고 흥겨운 인생을 주시려 오셨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우리도 마리아처럼 선한 일을 할 기회를, 인정받는 일을 할 기회를, 사랑할 기회를 주는 부모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미미목사 / 꿈동산교회


목-와 보라
본문 : 요1:35-51
찬송가 : 500장
 
오늘 본문을 보면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 중 두 명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은 그 둘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고 그들은 대답대신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말씀하셨다.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초청을 넘어 피상적 앎에서 체험적 앎으로 부르는 초청이다.
 
두 제자들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다. 세례요한이 그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 관해서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알고 있었기에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라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에 관해서 아는 것을 넘어, 와서 보며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셨다. 누군가를 통해 들은 예수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알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신앙은 들어서 아는 것을 넘어 와서 보고 체험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와서 보라 하자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함께 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말씀을 보면 그들 중 한 사람이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고 그리고 41절에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하고 있다.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경계인에서 참여자의 삶으로의 초청이다. 안드레는 처음에 세례요한에게 들어서 예수님에 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와서 보라는 초청의 말씀을 듣고 가서 함께 거하자 안드레 스스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일 뿐만 아니라 메시야임을 고백하고 증거하게 된 것이다. 안드레는 경계에 서 있다가 중심으로 들어와 참여자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 살게 된 것이다.
 
끝으로 본문 43절 이하를 보면 빌립이 자기 친구 나다니엘에게 "와서 보라"고 전하고 있다.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초청을 받는 자'에서 이제는 '초청하는 자'로 부르시는 명령이며 축복이다.
 
세례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을 듣고 그 제자 중 한 사람인 안드레는 그의 형제에게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증거했다. 그리고 안드레와 베드로의 친구인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친구 나다니엘에게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전하였다. 그리고 나다니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냐며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자 빌립은 와서 보라고 초청했다.
빌립의 초청은 우리에게 신앙의 종결자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신앙의 궁극적 모습은 초청을 받는 자에서 초청하는 자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피상적 앎에서 체험적 앎으로, 경계인의 삶에서 참여자의 삶으로 초청을 받는 자에서 초청하는 자로 부르심에 응답해서 신앙이 자라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보한목사 / 평화중부교회


금-인생의 풍랑
본문: 막 4:35-41
찬송가: 450장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던 중 큰 풍랑을 만나 이를 극복하는 내용  이다. 여기서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을 깨닫기를 바란다.
 
첫째, 예수님께서 타신 배도 풍랑을 만난다. 본문 37절을 보면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 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타신 배가 풍랑을 만나며 배에 물결이 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왜? 예수님께서 타신 배에 어려움이 왔을까? 여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오해를 갖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어려운 문제가 없는 줄로  오해한다. 시편 34편 19절을 보면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고난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고 아픔을 겪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편 46편 1절로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중에 만날 큰도움이시라."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노라면 고난과 사고와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된다. 시편 34편 19을 보면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도다"라고 했다. 언제나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에 염려할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건져 주시는 하나님보다 풍랑에  빠진 나만을 생각하면서 처지를  비관하여 인생을 포기하려고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잠언 24장 16절을 보면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려 지느니라"고 했다. 믿음의 사람을 일으켜 주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에 오히려 용기를 얻어 인생의 풍랑을 승리하시기 바란다.
 
둘째, 인생의 풍랑을 꾸짖으신 예수님을 보자.
 
본문 39절을 보면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의 문제를 꾸짖어 해결과 회복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풍랑을 만났을 때 풍랑의 지배를 받지 말고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인생의 풍랑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는 지혜있는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 바란다. 우리 인생길에 자주 찾아오는 인생의 풍랑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꾸짖으면 잠잠케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어려운 문제와 아픔 앞에 오히려  지배를 당하여 절망과 슬픔으로 좌절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문제 그 풍랑에 영향 받지  아니하시고 꾸짖어 잠잠케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풍랑 앞에 두려워하는 제자에게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풍랑의 위기 앞에 믿음을 사용하지 않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다. 인생의 풍랑을 극복하고 승리하려면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길에서 풍랑을 만날 때 오히려 믿음으로 풍랑을 꾸짖어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기목사 / 성광교회


토-네 보물이 있는 곳에
본문: 마 6:19-24
찬송가: 588 장
 
'광수생각'이라는 인기연재 칼럼 중 한 이야기이다. 한 아가씨가 친구를 만나서 "남자가 시원치 않아서 파혼했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전히 약혼자한테 받은 다이야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본 친구가 "왜 아직도 반지를 끼고 있니?"라고 물었더니, 아가씨는 "그 남자는 몰라도 이 다이아몬드 반지에 대한 내 애정은 변함이 없거든"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현대인의 문제점이다. 현대인은 사람보다는 물질에 더 관심이 있고, 인격보다는 돈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고 산다. 물질은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고 마음과 정신을 흐리게 한다. 5만원짜리 지폐를 들고 눈 가까이 점점 접근시켜 보자. 그전에는 자연도 숲도 보이고 주변에 집도 사람도 보이더니 지폐가 눈을 가리게 되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돈만 보이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우리들에게 교훈해 주고 있을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과 재물에 대하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이 말씀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에서 모든 것에 대하여 종말론적인 의식을 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내 돈 주고 샀다고, 내 것이 되는 것일까? 내 것이란 없다. 본래도 아니거니와 앞으로도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다. 우리가 이 세상에 물질을 쌓아두면 그냥 없어지게 된다. 잠시 동안 내 손에 있을 뿐이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극적인 종말을 되새겨 보자.
 
그렇다면 참 소유란 무엇인가?
 
내가 쓴 것만이 내 것이다. 내가 썼으니까 분명히 내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기에 갖고 있는 물질 잘 쓰길 바란다. 소유란 기회이다. 축복이요, 사명이다. 잘 쓰면 축복이 되는 것이요, 잘못 쓰면 물질 때문에 저주가 따른다.
 
또한 돈은 잘 써서 가치 있고 고상한 행복을 경험해야 한다. 주도적으로 기쁨과 선한 목적을 가지고 화끈하게 사용하자. 주님께서는 "냉수 한 그릇이라도 내 이름으로 주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하셨다. 선하고 거룩한 일에 쓰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말이다.
 
주님께서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신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돈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기도 하고, 이것이 나를 파멸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주님의 명령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탐욕과 교만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학명목사 / 천의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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