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2~17일

11월12~17일

[ 가정예배 ] 11.1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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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09일(금) 09:34

[가정예배]

월-영혼을 시원케 하는 샘물
본문: 요 4: 6-19
찬송가: 266장
 
헬라에 '시노뻬의 디오게네스'라고 불리던 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통 하나를 집으로 삼아 아무런 욕심 없이 생활에 만족하며 살았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와 그의 사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내가 왕이 아니였다면 당신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요? 내가 다 들어줄 터이니 말해보시오." 이에 디오게네스는 "예, 소원이 있습니다. 제발 내 몸을 따듯하게 해 줄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저리 좀 비켜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물러서는 알렉산더왕의 마음에 세상 것을 다 누리며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충격을 받은 부끄러움과 수치심, 이것이 바로 '디오게네스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주 작은 약점을 가리려 하고, 또는 그 약점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얽매여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남자니까 누구처럼 용기가 있어야 하고, 여자니까 누구처럼 예뻐지려고 성형수술을 해야 하고, 심지어 어떤 남자들은 변강쇠 콤플렉스에 빠지기도 하고 디지털 콤플렉스 빠지기도 한다. 누구나 콤플렉스 하나쯤은 갖고 있다. 이러한 삶은 너무나 힘들고 불행하다.
 
오늘 본문에 사마리아 여자라고 하는 컴플렉스에 빠진 한 여자를 만날 수 있다. 이 여인에게는 유대인에 대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열등의식에, 남자에 대하여 여자라고 하는 천박한 존재라는 것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또한 한 남자와 결혼하여 성공적인 가정을 가진 자에 대해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운 실패한 인생이었다.
 
이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와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하자, 여인이 대답한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하기를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답하신다. 이 말씀에 이 여인이 그만 주님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고 만다.
 
이 여인은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있는 여인이다. 그러기에 사는 게 죽을 맛이다. 만사가 힘들고 짜증나며, 고통스럽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만나 "내가 네게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할 때에, 이 여인은 "그런 물을 내게 주옵소서"라고 말한다. 이 간구를 들은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요, 내가 너와 같은 열등의식을 가진 자에게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신 메시야요, 그리스도이시라고 밝히 말씀하신다.
 
여인은 생수 되시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함 받았다. 여러 가지 열등감의 문제, 영혼구원의 문제, 인간적인 콤플렉스를 깨끗하게 해결함을 받는다. 그리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예수를 전하였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콤플렉스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구세주이신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들에게는 영혼을 소생케 하는 생수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도 시원케 하는 생명수가 됨을 믿으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도 세속 일로 피곤한 영혼들 위에 신령한 생수가 되시어 우리의 영혼을 씻기시고 거듭나게 하시사 새롭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학명목사 / 천의염광교회


화-요셉의 형통
본문 : 창 39:1-6
찬송 : 434장
 
요셉의 삶은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특별히 요셉의 옷으로 구별할 수 있다. 첫 번째 삶을 채색 옷을 입은 삶이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 함께 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다른 형제들에 비해 더 받고 채색옷을 입으며 남다른 꿈을 꾸는 삶을 살았다. 가정사가 복잡했지만 그래도 평탄한 유년시절을 보낸 삶이다. 두 번째의 삶은 종의 옷을 입은 삶이다.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의 종으로 사는 삶이다. 한 순간에 채색옷에서 종의 옷을 입으며 살게 된 것이다. 세 번째의 삶은 죄수복을 입은 삶이다. 채색옷에서 종의 옷을 입게 되어 힘들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보디발의 아내를 유혹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죄수로 살아가게 되었다. 한 순간에 유복한 가문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던 아들에서 애굽 사람의 종으로 이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언제 풀려날지 모를 비참한 처지가 된 것이다. 네 번째 삶은 세마포옷을 입은 삶이다. 요셉은 감옥에 갇혔다가 그가 한 때 감옥에서 꿈을 해석해준 술맡은 관원의 도움으로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그에게 인정받아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총리가 된 삶이다. 바로는 요셉이 그의 꿈을 해석하자 애굽에 그와 같은 명철과 지혜가 있는 자가 없다고 여기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버금 수레를 태워 애굽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게 하였다. 요셉은 채색옷에서 종의 옷, 죄수의 옷을 입다가 마침내 세마포옷을 입게 되었다. 
 
그런데 요셉의 어느 시절이 가장 행복한 삶이었을까? 또한 어느 시절이 그에게 가장 불행한 삶이었을까? 종의 옷을 입던 시절? 아니면 죄수의 옷을 입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던 시절일까?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요셉이 가장 불행하고 험한 세월을 보내던 종의 삶과 죄수의 삶에서 아주 특별한 구절이 눈에 띈다. 39장 2절과 23절이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을 형통한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표현이다. 이 구절은 요셉이 채색옷을 입던 시절이나 세마포옷을 입던 시절에는 나오지 않는 표현이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무엇일까? 어떤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요셉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떤 옷을 입고 사느냐? 그 옷이 상징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느냐?'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면 비록 종의 옷을 입던, 죄수의 옷을 입던 형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때론 주님과 함께 있음을 잊고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지금 겪는 고난에 불평하고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보다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게 하시고 고난 뒤에 있는 축복과 형통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보한목사 / 평화중부교회


 
수-한나의믿음
본문: 사무엘상 1:10-20
찬송가: 435장
 
한나는 남편 엘가나와 결혼하였으나 불임으로 인하여 큰 절망에 빠졌다. 이때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한나의 기도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괴로운 마음을 기도로 회복했다.

본문 10절을 보면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라고 한다. 만일 한나가   자신의 불임 괴로움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큰 시험중에 가정의 위기가 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필요를 구하기도 하지만 시험에서 승리하는 능력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불임의 괴로움만을 생각하고 그 상황에만 집중하면 반드시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였을 것이다. 언제나 갑짜기 찾아오는 괴로움의 문제 앞에 한나의 믿음은 그 괴로움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기도함에 있다. 현대인들은 다양한 괴로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마치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찾아온 괴로운 일을 방치하기만 한다. 괴로운 일이 마음 속에 하나 둘씩 쌓이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되어 몸과 마음과 신앙마저 무너뜨리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한나의 믿음의 기도처럼 마음의 괴로움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회복하시기 소원한다.
 
둘째, 간절함 마음으로 서원기도를 드렸다.

본문 11절을 보면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다.
 
한나의 서원기도는 자신의 불임중 괴로움을 하나님 앞에 사명으로 받아 하나님의 종으로 드릴 것을 기도하게 되었다. 괴로움 중에 간절함으로 서원기도함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선지자 사무엘을 출산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드리는 절대적  은혜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괴로운 인생길에 문제를 만나면 문제만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 중에 사명을 깨닫는 한나의 믿음을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 문제 해결의 방법과 결과가 있음을 믿으면서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같은 은혜를 받게 된다. 인생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께 신령함으로 소원 기도를 드리시기 바란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나처럼 괴로움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게 하옵소서. 문제를 바라보며 절망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키를 갖고 계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기목사 / 성광교회


목-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골3:12-17 
찬송가:304장
 
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라 하셨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용서하라 하셨을까? 때때로 사랑하기 싫은 사람이 있고, 때때로 절대로 용서하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답을 알면서도 물어보는 질문이고 투정이다.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용서해 주셨기에 우리에게 상처 주고 고통 주는 자를 용서해야 한다.
 
지난 여름 수련회 때의 일이다. 수련회 삼일째 저녁 "아직도 용서하지 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에 용서하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리세요"라고 말하자 한 남학생이 엉엉 울면서 말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저는 절대로 그 사람을 용서할수 없어요. 그래서 기도가 안되고 답답해 죽을것 같아요." "누구를 그렇게 용서할 수 없는 거니?" "아버지요! 아버지는 제가 어릴적 엄마와 누나와 나를 버렸어요. 엄마의 눈물과 한숨을 보며 자랐고 얼른 자라서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 없어도 잘 자랐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얼마 전에 찾아가 보니 돌아가셨대요." "얘야! 그래도 아버지가 생명을 준 하나만으로 감사하자.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넌 이 땅에 태어나지도 않았잖니"라고 말하며 다함께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
 
나같은 죄인을 택하셨구나 라는 구원의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변치않는 감사의 마음을 일으킨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13절의 밀씀처럼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할 때" 진정한 감사가 있다. 남을 용서한 사람이 자유한 사람이요, 자유한 사람이 감사할 수 있다.
 
1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에 있는 사람"이 감사한다고 했다.
 
주의 평강은 무념무상에서 오는 평안이 아니고, 주님이 내 안에 충만히 넘칠 때 오는 기쁨이다.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자가 되는가? 16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고 주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찰 때 감사가 넘치게 된다. 17절 말씀에"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할 때 우리에게 감사가 나타난다.

나를 위한 삶은 불평뿐이지만 주님을 위한 삶은 감사뿐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우리는 날마다 사랑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속에 살면서 고민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 하셨으니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하여 말씀 속에 거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미미목사/꿈동산교회


금- 오뚝이 신앙
본문 : 시 60:1-12
찬송가 : 543장
 
시편 60편은 다윗의 시편이다. 제목과 설명을 보면 다윗이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낼 때 쓴 시편임을 알 수 있다. 다윗은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하려고 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오뚝이 신앙을 가질 것을 교훈하는 것이다. 다윗 또한 넘어지길 수십 번도 더 했다. 그 때마다 그는 회복하고 승리했다. 그가 이렇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힘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오뚝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은 무게 중심이 밑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계속 넘어지는 힘든 시기가 있다고 해도 신앙의 무게중심이 하나님께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에게 무게 중심을 두고 사는 사람에게 결코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성공을 위한 실패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신앙의 중심이 바로 세워져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점검되어야 할 신앙의 무게중심은 무엇일까? 첫 번째 신앙의 무게중심은 '경외'(믿음)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겠다(시 60:4)고 말한다. 즉 승리의 깃발이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크게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하고 그 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하나님의 깃발)라고 이름을 붙인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은 그 어떤 우선순위보다 앞에 놓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승리를 주시는 것이다.
 
두 번째 신앙의 무게중심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고 구원해 주신다(시 60:5)고 말한다. 사랑은 쌍방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그의 사랑을 입는다(잠 8:17). 하나님은 그를 간절히 찾고 찾는 자를 사랑하시며 끝까지 책임져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세 번째 신앙의 무게중심은 '소망'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라(시 60:12)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면서도, 풀이 죽어 사는 사람이 있다. 교만은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근심,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늘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담대하라'는 것이다. 담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방황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다. 잠시 넘어질 수 있어도 다시 일어나 설 수 있다. 우리는 오뚝이 신앙을 가져야 한다. 신앙의 무게 중심을 확실히 해 두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담대한 사랑과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사심으로 늘 승리의 쾌가를 부르시는 삶이 되시길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삶의 주관자가 되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오뚜기 같은 신앙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신앙의 무게중심이 항상 하나님 안에 있게 하시고 믿음, 소망, 사랑으로 늘 승리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상영목사 / 천보교회


토-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 
본문: 눅5: 17- 26
찬송가 : 96장
 
미국의 캘리포니아 북부에 세코야 국립공원이 있다. 그 공원에는 레드우드(Redwood) 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들이 있다. 이 나무는 1년에 약 2미터 자라고 최대 1백미터 이상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지역의 특성상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1백미터가 넘는 그 큰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는 대신에 서로의 뿌리와 뿌리가 뒤엉켜 붙잡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 성경본문에는 한 중풍병자가 등장하고 있다. 그는 혼자서는 활동을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가 예수님께 나가기만 하면 고침 받아 건강하게 될 수 있는데 혼자는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 네 사람이 많은 인파를 제치고 그의 침상을 들고서 예수님께 나가 친구의 중풍 병을 고치게 한다. 이들은 어떤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수님을 만나 친구의 중풍 병을 고쳤을까?
 
첫째, 함께 동행하는 믿음이다.
 
친구들의 사랑을 받아 드릴 줄 아는 중풍병자와, 친구를 위하여 사랑을 줄줄 아는 함께 동행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바울의 사역은 바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바울 곁에는 '누가'와 '디모데'가 있었고, '에바브로디도'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밖에도 수많은 기도 후원자들과 함께 수고하는 동역 자들이 있었다.
 
둘째, 협력하며 행동하는 믿음이다.
 
믿음은 행동이 동반되어야 온전한 믿음이다. 네 친구는 예수님의 능력을 분명히 믿었기에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행동을 함께 보인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확신의 믿음이 있으면 행동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셋째, 포기하지 않는 적극적인 믿음이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는 그를 예수님께 데려 간다는 게 불가능 하였다. 이미 예수님이 계신 문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그래서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그의 침상을 달아 내렸다.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역사를 만들어 내며 적극적인 행동의 촉매제가 된다.
 
넷째, 영혼을 사랑하는 믿음이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는 친구를 사랑하기에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고자 했다. 사랑은 지붕위로 올라가는 적극적인 믿음으로 지붕을 뚫는 모험을 하도록 했고 기회를 만들어, 죄 사함과 치유함을 받고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였다. 중풍병자처럼 세상에 중독되고 마비된 영혼과,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도해 내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오늘의 기도>
영원히 영광과 찬송을 받으실 주님,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중풍 병자의 친구들처럼 다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성득목사 / 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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