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10일

11월5~10일

[ 가정예배 ] 1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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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01일(목) 13:41

월-나누고 베푸는 삶  
본문: 신명기 24:19-22
찬송가: 218장
 
이스라엘에는 대표적인 2개의 호수가 있다. 그것은 갈릴리 바다와 사해라 일컬어지는 호수이다. 사방으로 물을 나누어 주는 갈릴리 바다는 물고기가 풍성한 생명의 바다로 유명하다. 그러나 물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사해는 물고기 한 마리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나누는 곳에 생명이 있고 움켜쥐기만 하는 곳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예라 할 수 있다. 욕심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나누지 못하고 계속 받기만을 원한다. 이런 사람의 소유에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는다. 그러나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과 불쌍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이웃도 자신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왜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고대 가부장적인 봉건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집 없는 사람, 아버지 없는 자녀, 남편 없는 여인들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이러한 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배려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라고 명령하신다.
 
둘째, 나눔을 실천할 때 기쁨과 부요를 누리기 때문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다. 또한 그것 때문에 불행해진다. 나눔을 실천할 때 피차 사랑과 기쁨과 부요함을 누리게 된다. 마가복음 7장에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이 나온다. 이 큰 기적의 씨앗은 바로 자신이 먹으려고 준비하여 온 소년의 작은 도시락의 나눔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고 주님은 약속하셨다.
 
셋째, 나누고 베풀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나눔은 소유의 많음에 있기보다 존재의 넉넉함에 있다. 마음의 여유, 내면의 충만을 누리는 자만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항상 나눌 것이 있다. 우리 자식들에게는 주고 또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눔은 생명의 원리이다. 나눔은 희생으로 시작되지만 풍성함으로 열매를 맺는다. 기쁨은 나눌 때 그 기쁨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눌 때 그 슬픔이 절감이 된다. 깊은 샘물을 퍼내면 퍼낼수록 맑은 물이 올라오듯이, 우리의 삶은 나눔으로 더 풍성해진다. 모두가 나눔과 베품의 삶을 살아 주님 다시 오는 그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잘했다 칭찬 받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적은 사랑이지만 나눔을 실천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성득목사 / 동산교회

 


 

화-강도 만난 사람
본문: 눅 10:25-37
찬송가: 266장
 
인생이라는 길을 가노라면 강도 같은 인생, 강도 만난 인생, 강도 만난 자를 돕는 인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외면하고 사는 인생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인생 중에 하나만이 나의 인생이라고 단정짓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여러가지 모습이 우리의 인생이다.
 
첫째, 강도 같은 인생이다.
 
이들은 선량하게 자기 인생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해하는 자들이다. 선량한 학생을 왕따시키고 집단구타와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끝내는 죽이거나 자살하게 만드는 자들. 한밤중에 자고 있는 5살 아이를 이불채 걷어가 성폭력을 하는 자. 남의 나라 땅을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자들. 악하고 음란하여 온갖 술수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복과 믿음을 빼앗아 가는 자 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를 해하고 방해하는 자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들이다.
 
둘째, 강도 만난 인생이다.
 
강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향해 멀리 떠난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등진 사람은 누구나 사탄에게 고통을 당하며, 영적으로 강도 만난 사람들인 것이다. 또한 정신적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절망과 좌절감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정욕, 거짓, 열등감, 패배감, 무능감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강도 만난 사람이다. 또한 몸의 질병으로 약하고 지친 사람들, 각박한 세상의 그늘에서 도움이 필요한 무의탁 노인, 노숙자들. 고아들, 가난한 불법체류자들 그리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짓밞히는 약한 자들이 모두 강도 만난 사람들이다. 반대로 돈에 눈이 어두워 욕심에 붙잡히고 명예와 권세욕에 사로잡힌 사람들 또한 강도 만난 사람들이다.
 
셋째, 강도 만난 자를 돕는 인생이다.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친 자들의 죄는 무관심과 안일과 종교적 편견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 중이었지만 번거로운 일에 참여했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으며 강도 만난 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상처를 싸매는 희생을 치렀다. 그는 뜨거운 가슴과 민첩한 손발과 적극적인 참여의 용기와 실질적인 희생을 지불하는 좋은 이웃이였다.
 
주님은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씀하지 않았다.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다. 믿는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말이다. 그러므로 거짓 믿음이 있을 수 있다 . 모든 믿음은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했다. 우리의 인생은 어디인가? 강도같은 인생인가? 강도 만난 인생인가? 강도 만난 자를 돕는 인생인가? 자리는 늘 바뀔 수 있다.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때때로 강도 만난 인생을 사느라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을 보내시어 돕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다만 강도 같은 인생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지 마소서. 오직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미미목사 / 꿈동산교회

 


 

수-오늘의 반성과 내일의 기대
본문 : 시 42:1-11
찬송가 : 308장
 
짐승과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 짐승에게는 내일이라는 것이 없다. 돼지에게 내일이 있는가? 오직 욕망에 따라 사는 오늘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더불어 내일이 있다. 사람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할 뿐 아니라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질 줄 안다. 우리는 흔히 반성할 줄 모르고 미래에 대한 꿈도 없고, 아무렇게 되는대로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짐승(잠 12:1)이라고 말한다. 짐승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의 반성과 내일의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신앙인의 반성이란 무엇인가? 반성(反省)이라는 말은 되돌아보는 것, 되짚어 보는 것을 말한다. 반성은 과거에 대한 막연한 후회와는 다르다. 특별히 신앙인의 반성은 과거적이고 현재적일 뿐 아니라 미래적이어야 한다. 오늘 시편 기자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시편 기자는 옛 일을 기억한다. 슬픔과 기쁨(시 42:3-4)이 공존했던 순간들을 떠 올린다. 그리고 그 사건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 즉 사건들을 하나님의 빛 아래서 재해석한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했을까?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슬픔이 슬픔으로만, 기쁨이 기쁨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멧세지를 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의미 없는 일은 없다. 진정한 반성 없이 내일에 대한 올바른 궤도 수정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반성을 하되 지나친 감정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오늘 시편의 표현으로 말하면, 감정주의에 빠진 사람은 낙망과 불안이 가득한 사람이다. 흔히 이런 사람을 비관주의자라고 한다. 슬픔만을 확대해 볼 뿐, 슬픔 뒤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지 못한다. 어려움을 통해 오히려 천국 같은 삶을 누릴 수 있는데 지옥 같은 삶을 산다. 반성을 하되 비관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으로 진정한 반성은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소망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불안과 낙심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의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했다. 우리가 점검하고 반성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소망되신 하나님을 갈망하는 일이다. 다시금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고 실패의 삶이라고 비관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까지 소망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길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새롭게 미래로 나아가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에 대해 비관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소망되시는 주님을 의지함으로 날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상영목사 / 천보교회

 


 

목-아브라함의 믿음
본문 : 창세기 22: 1-14
찬송가 : 434장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백세에 얻은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나.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로 순종하는 믿음이다.(3절)
 
본문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조금의 망설임 없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출발한다.
 
이 믿음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예수님께서 어부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때도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라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부르시면 즉시로 순종하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생각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필자가 선지동산에서 신학공부를 하던 중 회갑이 넘어 신학에 입문한 만학도를 만났다. 이유인 즉 젊은 날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일반대학 졸업 후 많은세월을 허비하고 계속되는 사업실패로 만신창이로 중병을 거치고 크게 깨달아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너무나 늦게 두 손 들고 왔다고 고백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하나님의 명령과  부르심을 지체할 때 시험에 들게 되고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변함없는 믿음이다.(4절)
 
본문  4절을 보면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고 했다. 벌써 아브라함이 집을 떠나온지 3일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아브라함의 시선은 하나님의 명령장소인 그곳, 모리아산을 바라보고 있다.
 
건강한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 병든 믿음 연약한 믿음의 특징은 변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고 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은혜를 받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첫사랑 첫믿음을 잃어버린채 방황한다. 참된 행복은 첫사랑 첫믿음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변함없는 믿음을 이루어야 한다.
 
믿음의 방해되는 것을 정리하는 결단의 믿음.(5절)
 
본문 5절을 보면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들이 이삭을 번제로 드림에 방해될까봐 모리아산 정상까지 함께 가지 아니하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지시한다. 언제나 믿음의 방해꺼리들이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가?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방법은 믿음생활에 도움되지 않는 것을 과감히 정리하고 결단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순종하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변하지 않는 믿음을 주옵소서. 특별히 믿음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은 정리하고 결단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기목사 / 성광교회

 


 

금- 인생의 행복지표
본문: 눅 12:13-21
찬송가: 588장
 
프랑스에 삐에르라고 하는 유명한 신부님이 있다. 그는 빈민구호 공동체인 엠마우스(EMMAUS)를 창설하신 분이다. 이 분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한 청년이 자살 직전에 신부님을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한다. 이 청년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자신은 지금 죽을 수밖에 없다고 절박한 심정을 말한다. 그러자 신부님은 동정어린 말로 그를 위로한다. "충분히 자살할 만한 이유가 있군요. 그 형편이라면 저라도 자살하고야 말 것 같군요. 그러나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죽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자 청년이 대답하기를 "그러죠. 어차피 죽을 몸이니 죽기 전에 신부님께서 필요하시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부님이 시키는 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돕기 시작한다.
 
이 청년은 일을 다 마치고 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신부님, 만약 신부님께서 제게 돈을 주셨든지,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주셨더라면 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제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고 섬기는 사이에 내가 죽어야 할 이유보다는 살아야 할 이유를 충분히 찾게 되었으며, 이제 저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재산은 축복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인격이 감당할 수 있을 때, 내 정서가 행복을 느낄 때, 내 가치관이 그것을 충분히 고귀하게 인식할 때, 축복된 재산이 되고, 축복된 인격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
 
소유와 인격은 별개다. 소유와 행복도 별개다. 더더욱 소유와 건강도 별개다. 오늘 이 부자가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이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부자에게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인간의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생명과 영혼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루에 정한 량을 거두면서 행복해 했다. 그러나 정한 양 이상을 거두었을 때, 그들에게 오는 징계는 슬픔과 죽음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물질도 잃었고, 영혼도 구원 받지 못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진정한 행복지표는 무엇일까?
 
유대인의 격언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이 혼란스럽다. 이 세상은 결코 재물을 쌓아 둘만한 곳에 못된다. 좀과 동록, 도적도 해함도 없는 하늘나라에 쌓아 두시기 바란다. 그리고 인생에는 참 행복과 생명을, 우리의 영혼은 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그동안 물질의 허무함을 알면서도 이것을 인생의 최고의 지표로 삼았음을 용서하옵소서. 이제 나의 생명과 영혼을 영원토록 행복하게 하실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루하루 주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김학명목사 / 천의염광교회

 


 

토-지도자의 힘쓸 것
본문 : 딤후 2:15-16
찬송가 : 332장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때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할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때이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복음 안에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지도자가 힘쓸 것 두 가지를 권면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 국민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되며 가정과 교회에서도 마음에 새길 가르침이다.
 
첫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기에 힘쓰라고 말하고 있다.
 
지도자는 일꾼이어야 한다. 섬기는 사람으로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군림하고 명령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지도자는 더 이상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람을 의식하면 인기에 영합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청지기의 사명을 깨닫게 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어느 때보다 대선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포플리즘이라고 하지만 국가도 대통령도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국민을 섬기고 지키고 돌보는 것, 소외된 약자의 편을 들어 공의를 세우는 일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지도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것들이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기 위해서 스스로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마음에 새겨야 하며 그 말씀을 가르쳐 모두가 지키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진리 가운데 행하여 본이 되어야 한다. 또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한다. 자신의 불의에 대해서 관대하면서 어떻게 남에게 공의를 세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사람이기에 늘 부끄러움이 남기 마련이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디베랴 호수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부활한 예수님이 찾아가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묻는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을 부인한 일을 떠올리며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비록 베드로에게 실수와 허물이 있을 지라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 하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위로와 회복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우리는 연약하며 부끄러울 것이 많기에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으로 다시 인정하신다. 그러니 진리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둘째,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가치 없고 쓸데없는 말을 절대 가까이 두지 말고 멀리 하라는 것이다. 많은 지도자들이 말실수로 국민의 비웃음을 사고 자리에서 쫓기듯 내려오는 모습을 본다. 지도자의 말에는 더 많은 책임이 뒤따른다. 그렇기에 언제 어디서든지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하며 입을 지키는 일과 남을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런 일에 힘쓰는 지도자가 이 나라에 교계에 세워지기를, 우리 또한 그와 같은 사람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진리의 말씀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에 권위가 있는 지도자를 세워주시고 우리 또한 그런 사람이 되도록 힘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보한목사 / 평화중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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