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미래를 위한 현재, 루퍼

밝은 미래를 위한 현재, 루퍼

[ 말씀&MOVIE ] 영화-루퍼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29일(월) 16:01
[말씀&MOVIE] 라이언 존슨, SF, 액션, 청소년관람불가, 2012

'루퍼'는 시간 여행을 다룬다. 소재가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스토리텔링에도 큰 무리가 없어 괜찮은 영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을 다룬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여론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 대표적인 부분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서로 맞닥뜨리며 갈등 관계로 전개시킨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영화 안으로 들어가 보자(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2044년. 타임머신이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2044년부터는 가능해진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나 타임머신이 범죄조직에 의해 불법적으로 사용됨으로 인해 2074년에는 금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인 메이커라 불리는 악당에 의해 타임머신은 계속적으로 사용되고, 미래 시대에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를 30년 전의 세계로 보낸다. 그리고 미래로부터 현재로 내려온 사람은 이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을 살인하는 자로 고용된 자는 루퍼로 불린다. 어려서 엄마에게서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조(조셉 고든-래빗)는 실력 있는 킬러로서 인정받는다. 경우에 따라서 루퍼들은 원치 않게 30년 후의 자신을 제거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를 가리켜 '계약 해지'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 루퍼들은 30년 후에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흥청망청 살아간다. 결국 미래 없는 현재의 삶, 곧 절망과 포기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실력 있는 루퍼로 살면서 프랑스로 이주할 꿈을 갖고 사는 조에게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은 바로 자신이 죽일 대상으로 미래의 자기(브루스 윌리스)와 조우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래의 조가 오게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는데, 레인 메이커에 의해 살해당한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장차 악당으로 성장할 어린 레인 메이커를 제거해 아내의 죽음을 막을 생각으로 30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조는 자신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래의 조를 제거하려고 한다.
 
이런 갈등 가운데서 두 명의 조는 시골 한적한 곳에서 미래의 레인 메이커가 될 아이를 발견한다. 미래의 조는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현재의 조는 그것을 막으려고 한다.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미래의 조를 보면서 현재의 조는 엄마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레인 메이커로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희생을 선택한다.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상상과 선택은 자신의 과거 경험에서 얻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그 자신이 엄마로부터 버림받았고, 결과적으로 킬러로서 살아오게 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보호와 양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우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엿볼 수 있다. 영화는 현재와 미래 두 개의 상황을 서로 대조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미래는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한 것이고, 현재는 장차 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아이가 엄마에 의해 제대로 양육된다면 비록 자신은 사라진다 해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악한 레인 메이커에 희생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담한 모험이었다. 사실 미래의 조는 현재의 조에게 있어 필연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인 결과를 거부하고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다는 의미에서 자살로 볼 수 있지만, 현재의 조가 선택한 것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절망이다) 인류를 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한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 지는 결국 현재 어떤 보호와 양육 아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점은 결국 미래 자체가 현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복선으로 제시해 준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의 조는 비록 아내를 만나 개과천선하였지만 절망적인 삶의 결과였다. 현재의 조는 그 사정을 알 수 없었다 해도 영화가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지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미래가 절망적인 삶의 결과로 나타난다면 아무리 미래라고 해도 결코 좋은 것일 수 없다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밝은 미래를 위한 길임을 역설한다.
 
현재는 소망의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다.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묻지마 살인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미래를 포기하며 절망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교회는 바로 이 점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세상의 소망으로 구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점점 피폐해져가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현장과 삶의 자리에서 교회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로 각인되어야 한다. 교회가 이 시대의 소망이라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과제이다. 희생해야 할 일이 있다면 희생하고, 투자해야 할 일이 있다면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관련해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결과야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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