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더 높이, 더 밝게

십자가를 더 높이, 더 밝게

[ 논단 ] 십자가를 더 높이, 더 밝게

원영희간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12일(금) 15:16
[주간논단]

지난봄, 미국 미시건 주의 캘빈 컬리지(Calvin College, 1876~ )를 방문하기 위해, 작은 도시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를 다녀왔다. 대학 캠퍼스도 아담하고, 학생들도 친절하고 순수해 보였고, 캠퍼스 타운은 또 어찌나 평화롭던지, 첫 방문이었지만, 필자가 나그네라는 사실을 문득 잊을 정도였다. 오히려 아주 오래 살아 낯익은 동네를 걷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특별한 느낌의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바로 캘빈 컬리지를 품고 있는 미국 중북부의 이 작은 도시 그랜드 래피즈에는 개혁교회 전통이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장로교회를 비롯한 많은 예배당 건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다른 미국 도시들에서는 보기 힘든 참으로 '진귀한' 풍경 때문이었다.
 
도시의 밤하늘에 십자가가 유난히 많이 보이는 우리나라. 늦은 밤, 한국에 도착한 어느 외국인 관광객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야경 속에 십자가가 많이 보여 마치 공동묘지 같았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전기를 절약하자는 취지에서 밤에는 십자가 네온등을 꺼라, 붉은 색이 좀 두드러지니 좀 약한 색으로 바꾸라는 항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만큼 소중한 표가 어디 있을까. 네온 십자가 난립이 문제라면 교계 내에서 논의를 통해 정리하면 되고, 절약이 시급한 차원이라면 켜는 시간을 조절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밤하늘 높이 걸린 십자가가 우리 믿는 이들에게 주는 메시지, 그 의미에 대한 혼돈만큼은 믿는 이들 사이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십자가와 함께 교회건물도 그렇다. 설계에서부터 내부 꾸미는 일까지 그리스도 복음 전파의 진정한 가치를 담은 성전을 봉헌해야 한다. 시작은 그랬으나, 과정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갈등으로 인해 원래의 의미를 희석한 건물이 되다 못해, 성전이 아닌 세상적인, 아주 세상적인 초대형건물로 후다닥 짓고 마는 식이 되는 건 곤란하다. 자꾸만 가보고 싶은 고향 언덕 위의 작은 예배당도 좋다. 도심 속에서 무거운 세상의 짐으로 힘든 이들에게 언제라도 쉼의 공간을 주는 널찍하고 편안한 성전도 좋다. 어두운 밤하늘을 밝혀주어 '실제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빛을 주고 길을 보여 주는 등대와 같은 십자가만큼 다 소중하다. 세상의 논객들이 믿는 이들 간에 싸움을 붙여 우리를 미혹케 하는 일은 수도 없다. 건강한 토론은 언제라도 필요하지만, 논쟁에 휩싸여 중요한 우리들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고 포기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선한 분별력을 구해야만 하겠다.
 
미국의 대표적인 큰 도시들, 시카고, LA, 뉴욕 중심가에도 대형 건물의 교회들은 있지만, 더 이상 예배가 살아있는 성전이 아니라 그냥 오랜 유물의 하나로, 성도들보다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의 교회들에 묻고 싶다. 1백20여 년 전,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서구의 대도시 큰 교회 건물들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는지 묻고 싶다. 대도시의 흐름에 기독교의 가치를 하나씩 둘씩 양보하다보면, 결국 껍데기인 건물만 남지 않을까? 성경에 나오는 가치들 중에 도대체 포기할 가치가 하나라도 있나?
 
조화와 양보가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에 대한 용기 있는 대응은 언제라도 값지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변호사이며 성공회 사제였던 담대한 존 던(John Donne, 1572~1631)의 용기처럼 말이다. 성전 안에 십자가를 떼어 내리자는 일부 사제들의 제안에 반대하여 유명한 시 '십자가(The Cross)'를 지었다.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며 던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그대로,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셨는데, 어찌 내가 / 그 형상을, 주님의 십자가의 형상을 부정한단 말인가?" 그리고 답한다. "십자가들을 갈망하라. 그 누구도 타락하지 않도록!"
 
처음 가본 작은 도시, 그랜드 래피즈가 기독교인 나그네에게 평화를 주었듯이, 우리나라 모든 도시들이 은혜로운 크기의 예배당 건물들로, 또 따스한 십자가로 더 큰 평화의 향기를 뿜어내길 기대한다.


원영희권사/ 새문안교회ㆍ세계YWCA이사ㆍ성균관대 번역학과 대우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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