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남겨야 할 것인가?

이름, 남겨야 할 것인가?

[ 논단 ] 이름, 남겨야 할 것인가?

손달익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9월 04일(화) 14:31

[주간논단]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우리 속담을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진리처럼 믿어왔다. 그리하여 이름을 남기는 일을 위해 기를 쓰고 다투고 경쟁하고 살면서 이것이 어떤 사회적 부작용을 만들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과연 이름은 남겨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역사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피 흘리듯 싸우며 만든 내 이름의 영광이 그리 빛나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름 없는 삶을 살았어도 두고두고 빛나는 삶의 주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1873년 아프리카 선교에 일생을 바친 리빙스턴이 평소의 기도하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를 사랑했던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 동역자들은 그의 시신을 미라로 만든 후 9개월간의 긴 여정을 거쳐 런던으로 운구해 왔고 영국 정부는 웨스터민스터 성당에 안장했다. 그런데 이 위인의 장례식 전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한 시도 그의 시신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아프리카 선교 현지에서부터 동행하여온 리빙스턴의 조수 겸 동역자였던 두 사람의 무명인사였다. '수지와 쿰바'로 알려진 이 두 사람은 평생을 리빙스턴의 동역자로 살면서 길 안내자요 통역원이었고 경호원이었으며 친구였고 그의 절친한 현지 고문으로 살아왔다. 만약 이 두 사람의 동역자가 없었다면 리빙스턴의 아프리카 사역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였을 것이다.

역사와 세상이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삶이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성경에도 이 비슷한 내용이 있다. 아브라함이 나이 들어 아들 이삭을 얻었다. 그 아들이 성장하여 이제 결혼할 때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이 고민에 잠겼다. 사는 곳 근처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적당한 규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생각하다 못한 그는 동족들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사람을 보내어 며느리감을 선택하여 집으로 데려오도록 부탁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이 막중한 대사의 책임을 지고 길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곧 아브라함 가정의 늙은 종이었다. 그는 그 주인 아브라함이 1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의 아내 구하는 일의 전체를 책임진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이 늙은 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비록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의 책임을 잘 감당한 까닭에 삶이 자랑스럽고 이 세상 살다간 보람이 있는 뿌듯함을 안고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나 세상에서나 자기 이름이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떻게 인구에 회자되는 지는 개인에게 매우 중요하고 때로는 그 내용이 지나치게 모욕적이어서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물론 남의 이름에 공연한 흠을 내고 근거도 불충분한 이야기를 쉽게 발설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해치는 것은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에도 저촉될 법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지나치게 개인의 이름이 받는 대우에 민감하여 일희일비할 이유는 없다.

내가 한 일보다 과소평가되어 속상하기도 하고 관계도 없는 일에 언급되면서 억울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은 주님께서 맡기신 일에 전념하는 그것이다. 주역인가 조역인가의 문제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인정하는가 아닌가도 근본은 아니다.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부르심에 응답하면 그만이다. 엘리야처럼 그 이름을 드러나게 하시면 그에 어울리게 충성하고, 숨겨둔 칠천 명처럼 쓰시면 그렇게 살면 된다. 억지로 드러나게 하려면 잡음이 생기고 드러난 이름이 부끄러워지게 될 수도 있다. 억지로 이름을 남기려하다가 자칫 악명 높은 자가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선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후보들만이 아니라 그 곁에 기생하면서 이름 한 번 남겨보고 그 이름을 이용해서 또 다른 이득을 챙겨보려는 인사들이 즐비해 보인다. 우리는 좀 나을까? 나부터 좀 더 초연하면 참 좋으련만….


손달익목사/부총회장ㆍ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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