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밥상의 창조론적 이해(한경호)

생명밥상의 창조론적 이해(한경호)

[ 생명밥상 ] 생명밥상의 이해

한경호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24일(화) 15:13

(생명밥상)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밥과 반찬들은 모두 생명체이다. 생명의 존속은 다른 생명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생물학적으로 그것을 '먹이사슬(food chain)'이라고 한다. 거대한 생명계의 생존과 존속은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면서 생명망(web of life)을 형성한다. 우리는 TV를 통해서 자연생명계에서 항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먹고 먹히는 광경을 볼 때마다 놀라움과 함께 잔인한 동물의 세계에 혀를 차며 불편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사람 역시 작물을 기르고 '죽여서' 먹고, 가축을 길러서 잡아먹는다. 야생동물도 사냥을 하거나 포획하여 먹는다. 심지어 산 채로 먹는 경우도 잇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먹잇감이 가장 광범위하며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되지 않는 존재이다.
 
인간 이외 생물들의 먹이사슬은 본능적인 관계에 속한다. 인간도 물론 생존의 본능으로 다른 생명체를 먹지만 의식과 도덕의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먹이사슬에 대하여 보다 깊이 이해의 차원을 갖고 있다. 밥상에 올라오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 반찬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입에 들어오는지 살펴보면 아마 입맛이 떨어지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가축들을 죽이는 도살의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 내가 왜 고기를 좋아하며 먹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보지 않고 먹으니까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을 했다. 만물 속에는 '한울님'이 계시므로 생명이 생명을 먹는 것은 한울님이 한울님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다. 만물의 화육과 생장은 생명이 생명을 위해 먹혀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며 생명계는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의 거대한 한울님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이천식천(以天食天)은 먹이사슬의 세계를 생물적 차원을 넘어서 높은 영성적 차원으로 해석한 대표적인 말이다. 불교에는 보시(報施)라는 말이 있다. 다른 생명체들이 나를 위해 죽음으로써, 보시함으로써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승들은 기어가는 개미도 밟지 않으려는 생명에 대한 깊은 '자비심'으로 수행한다. 먹이사슬 현상을 먹고 먹히는 잔인한 약육강식의 본능적 관계로 보지 않고 생명의 영성으로 바라보는 말과 실천이다.
 
우리 기독교의 경우, 다른 생명체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중심적인 오만한 시각이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다른 생명체를 나의 먹이로 삼기 위해 죽이는 행위에 대해 감수성이 매우 둔하며,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런 마음으로는 생명의 영성을 기를 수 없다. 노아시대 홍수심판 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지만 동시에 다른 생명체들과도 계약을 맺으셨다(창 9:9-10)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모든 생명체는 인간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형제이며 그것들과의 조화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라는 고백에서 형제는 인간을 넘어서서 모든 생명체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생명밥상은 먹이사슬에 대한 창조론적 이해에 바탕하여 생명의 영성과 감수성을 갖출 때에 더욱 빛날 것이다.

한경호목사/횡성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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