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랑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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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O칼럼 ] 환경재앙

조상식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7월 14일(토) 10:52
NGO칼럼

최근 언론을 통해 오랫동안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아 대지는 타들어가고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농작물은 말라 죽어가고 있다는 보도기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1백4년만에 겪는 극심한 가뭄으로 전 국토가 목말랐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농민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비를 애타게 기다린다고 하였다. 농민들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필자도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어느새 도시생활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냉장고를 열면 여러 종류의 시원한 음료수와 물이 있고 샤워기에서는 시원한 물줄기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가뭄과 물 부족 이야기는 다른 세상의 일인 듯 느껴진다.

도시생활에서 가뭄을 몸으로 느끼는 경우는 길이나 도로 가에 심어놓은 가로수를 볼 때 뿐이다.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서 충분한 물을 흡수하지 못한 가로수가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말라가는 나무에 지자체에서는 임시 방편으로 물주머니를 달아 물을 공급해 주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농부처럼 애타게 비를 기다리고 알곡을 여물게 할 시원한 바람과 쨍쨍한 햇빛을 기다리는 갈급함이 도시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있는가?

도시생활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도시생활에서 편안함과 물질의 풍요를 누린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 주변에서 하나하나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려 가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함께 사는 동물이 없다. 참새도 제비도 토끼도 족제비도 두더지도 고라니도 보이지 않는다. 함께 있는 동물이라고는 애완동물(반려동물) 뿐이다. 고양이도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여 길거리 동물,밤의 동물로 쫓겨나고 있다. 식물이라고 해 봐야 고작 길 가의 가로수와 가정, 사무실에서 댓가를 지불하고 구입해서 키우는 화초뿐이다. 이제는 도시생활에서 나무가 울창하고 자연스레 자라 군락을 이룬 숲의 신선함을 맛보기는 참 힘들게 되었다. 생활은 편리하고 수준은 높아졌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높아질 뿐,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상대적으로 점점 낮아져만 간다.

오늘날 인류는 문명의 개발에 의한 환경재앙에 직면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곳곳을 누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뎌진 우리의 마음은 풍요와 편리함에 빠지고 욕망에 쫓겨 몸부림치며 오늘도 막연하니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댄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 좋았더라'며 그곳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하신 지구동산,그 옛날 푸르른 에덴동산은 성경속에서만의 동산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는 것일까? 낙원의 풍성함과 풍요로움은 우리 삶의 우선가치가 변화하면서 정녕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 되었는가? 땅의 식물을 먹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어주며 친밀하게 지내던 추억들은 영원히 우리의 상상 속에 답답하게 가두어 두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주신 지금 이대로의 자연은 우리가 평화롭게 거닐며 온갖 식물과 동물과 곤충,새들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려야만 하는 세상이 아니란 말인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인간이 더럽고 해롭다고 죽이고 몰아내는 동물도 식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신 세상(요 3:16)"은 인간 세상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세계를 가리키는 말씀임을 가슴 깊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운행되고 자연이 곧 하나님의 집이며 계시이다. 그렇다면 피조세계인 자연을 하나님의 몸으로 믿어 자연을 잘 돌보고 가꾸는 일이 하나님 지으신 창조세계의 청지기로 부름 받은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사명감을 갖고 동물을 대하고 식물과 함께 살며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을 우리도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가 아닐까 생각하고 반성해 본다.


조상식 / 장로ㆍ총회 사회봉사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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