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대표 기관에서 관리해주길"

"한국교회 대표 기관에서 관리해주길"

[ 교계 ] 언더우드 3∼5대 후손,양화진 방문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2년 06월 05일(화) 13:27

"완전히 딴세상이에요."

   

지난 1일 양화진 내 언더우드 일가(一家) 묘역 앞에 선 원득한씨(리차드 언더우드)가 웃으며 말했다. 언더우드 3세로 생존해있는 후손 중 최고령인 그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남대문에서 동대문이 다 보일 정도로 평지 같았던 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이 고맙다. 하지만 젊을 때는 이남 이북 없이 평양도 가고 그랬는데 아직도 분단돼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소회를 밝혔다. 전쟁 발발 후 자진 참전해 유엔군 통역관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여기 누워계신 형님하고 저하고 통역자로 한국전쟁 때 있었다"며 "(분단이) 꼭 사람의 다리를 자른 것처럼 암만 잘 살아있다 해도 반 죽은 사람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교장을 역임했던 서울외국인학교 1백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2007년에 이어 5년 만에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원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이 잠들어있는 양화진에는 10년 만에 발걸음을 했다. 언더우드 4세인 원한석씨(피터 언더우드)를 비롯해 양화진을 찾아온 3∼5대 후손들은 정성스레 잡초를 제거하고 묘역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으로 짧은 방문을 마쳤다. 원한석씨의 딸과 사위까지 9명이 이 자리에 같이 했으며 1927년생인 원득한씨는 "이번 방문이 사실상 마지막일 수도 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특히 1985년 경성구미인묘지회가 한국교회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에 양화진 묘역을 증여할 당시 구미인묘지회의 공동대표 중 한사람으로 참여한 그는 "한경직목사님께서 이 건물(선교기념관)을 영원히 외국인들을 위한 예배처소로 사용할 것을 약속하실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는 너무 고마웠는데 지금은 원래 목적이 완전히 뒤집어져 있어 섭섭하다"며 "고종에게서 받을 때부터 이곳은 선교사들만의 묘지가 아닌 구미인묘지였는데 역사를 모르는 기관에서 맡아 이름까지 잘못 붙여놓았다. 예전에는 기독교 정신으로 선교사든 아니든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소중하게 대했다"면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에서 양화진 관리를 맡아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후손들은 이날 양화진 방문 외에도 판문점 및 연세대 방문,서울외국인학교 1백주년 기념 갈라 디너쇼 참석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지난 4일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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