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한 모험에 침을 뱉지 마라 <이민자>

더 나은 삶을 위한 모험에 침을 뱉지 마라 <이민자>

[ 말씀&MOVIE ] 크리스 웨이츠,드라마, 12세, 2012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21일(월) 16:16
'이민자'는 '자전거 도둑'(비토리오 데 시카)을 보았던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이 영화의 현대적이고 미국식 재현으로 여겨질 것이다. '자전거 도둑'이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시대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암울한 정치에 대중적으로 반응하고자 했다면, '이민자'는 다소 변형된 형태로 미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선택한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정치에 대한 웨이츠 감독의 반응으로 읽혀질 수 있다. 그만큼 영화는 미국의 경제 상황과 그에 따른 이민정책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삶의 단면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향한 인간의 갈망과, 또 그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하고 있다.
 
카를로스는 멕시코 출신의 불법체류자다. 아내와 함께 왔지만, 그녀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남자에게로 갔다. 엄마 없이 자라고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란 아들 루이스는 학교와 동네에서 늘 위태롭기만 하다. 정원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카를로스는 성실함을 인정받긴 하지만, 수입이 시원찮다. 그래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을 면할 수 있고 또 꾸준히 노력하면 제법 괜찮은 돈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중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료에게서 트럭을 구입한다. 동생에게서 빚을 내어 어렵게 돈을 구한 것이라 부담은 컸지만, 열심히 일하면서 갚을 것을 다짐하는 카를로스는 벌써부터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밝은 미래를 희망한다.
 
그러나 함께 일하던 동료가 트럭을 훔쳐 달아나, 카를로스는 하루아침에 곤경에 빠진다. 아버지의 고통을 지켜보고 마음이 동한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트럭을 찾으러 나선다. 어렵게 수소문해서 마침내 차를 훔쳐간 사람을 찾지만, 이미 가족의 병원비를 위해 팔아버렸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분노하는 아들을 달래면서 카를로스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아들과 함께 자동차 중고상을 뒤져 마침내 자신의 트럭을 찾아낸다.
 
그러나 발견의 기쁨도 잠시, 순찰중인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불법체류자인 카를로스는 아들만을 미국에 남겨둔 채 고국으로 추방된다. 추방당하는 와중에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오해로 가득했던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급속도로 회복이 되어, 아들 루이스는 아버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이민자 정책과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지원 등에 관한 미국의 정책이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던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많은 여론을 자극했던 영화다.
 
그러나 이민자 문제는 단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주자 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충분히 공감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소수의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행각은 그들에 대한 혐오감을 증폭시켰고,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들의 기본적인 인권유린과 함께 피부로 느낄 정도의 인종 혹은 외국인 차별이 심각하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회자하고 있는 사실이다. 체류기간을 넘겨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들을 미국의 동생에 맡겨두고 추방당한 카를로스가 다른 멕시코인들과 함께 다시금 미국으로 불법 월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를로스에게 미국이란 나라는 단순히 더 나은 삶을 위한 나라만은 아니다. 아들이 머물러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불법 월경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는 인상을 준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불합리한 정책은 또 다른 불법을 낳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민자 정책이외에 영화를 통해 듣는 화두 가운데 하나는, 도대체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인들과 이민자들, 그리고 불법 체류자들에게서 각각 다른 대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카를로스에게서 더 나은 삶이란, 아들이 바르게 자라고, 아들과 함께 머물며, 일하고 또 그 대가를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지극히 소박한 삶이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 이주자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고국에서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들의 꿈은 거창하지 않으며 지극히 소박하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전부다. 때로는 가족을 데리고 오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어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더 나은 삶을 결코 탐욕이라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더 나은 삶을 원하는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이들에 대해 보이는 편견과 차별이다. 이것은 욕망의 차원을 넘어서 인권유린으로 이어지며, 심하면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기독교인에게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일 뿐 우리 자신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 또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위한 길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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