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1~26일

5월21~26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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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17일(목) 13:43

월-남성들이 든 지팡이
본문: 출애굽기 4:20
찬송가: 93장
 
어떤 분이 말했다. "남성분들이 누런 월급봉투 받던 때가 행복한 시기였다"고, 누런 월급봉투가 남성분들에게 힘이었다.
 
남성에게 진정한 힘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 가면 토프카피란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모세의 지팡이가 있다. 그런데 방문객들은 질문한다. "이것이 모세의 지팡이 맞아?"
 
그 이유는 그 지팡이가 아주 작으며 길이가 약 1미터정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질문 속에는 다분히 '십계'란 영화에서 보았던 크고 긴 지팡이가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미디안 광야의 나무로는 그런 나뭇가지가 있을 수 없고, 굵고 긴 지팡이를 만들 수 없다. 모세가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80세의 나이에 애굽으로 가는데,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바로 작은 지팡이 하나였다. 그가 늘 사용하던 똑같은 지팡이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갈 때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한다(출4:2).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첫째로, 지팡이는 노화와 무능의 상징이다. 건강한 사람은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 두발로 걷기 힘들 때 지팡이를 짚게 된다. 모세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지금 80세나 되었고, 삶의 의욕과 목적도 상실했다. 과거의 죄책감과 두려움에 짓눌려 무기력한 모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지팡이였다. 둘째로, 하나님은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신다. 애굽의 궁중 생활, 많은 애굽의 학문, 그리고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던 모든 것을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의지하고픈 지팡이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지팡이를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팡이만 의지하라고 하신다.
 
끝으로,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모세가 지팡이 하나만 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동역자 아론을 준비하셨고, 장로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셨다. 이 하나님의 지팡이를 통해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온다. 모세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까지 이 하나님의 지팡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살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사명을 맡긴 종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의 지팡이'를 주신다.
 
남성들의 손에, 가장들의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져야 한다.
 
내가 힘들 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지팡이, 가족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는 지팡이 그리고 가족을 이끌고 가는 인도의 지팡이이다.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오늘 예배가운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려주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가족들의 삶을 지고, 치열한 삶의 현장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남성들과 가장들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려주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 시대를 주님 뜻대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한호목사 / 춘천동부


화-청년들이여!
본문 : 전도서 11:9-10
찬송 : 413장
 
"한 나라의 장래를 알려면 그 나라의 젊은이를 보라"는 말이 있다. 청년은 다음 세대의 주역들이며 그 주역들이 어떠한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가 그 다음 세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 교회의 장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교회에 있느냐는 그 교회의 미래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집안의 젊은이들의 정신이 얼마나 건강하냐에 그 운명이 달려 있다. 때문에 인생의 아침에 비유되는 청소년시절은 그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그 집안, 나라, 교회 그리고 세계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청년의 때는 귀한 시기다. 전도서 기자인 솔로몬은 그의 기록의 맨 마지막 부분을 자신이 젊었을 때를 기억하면서 젊은이들을 위한 교훈의 말씀으로 정리하며 전도서를 마치고 있다. 한마디로 '멋지게 살자. 힘있게 살자. 자신을 성장 시키면서 살자.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 된 삶을 잘지 말자'는 것이다.
 
청년의 시기는 즐거워야 할 때다. "내 젊음을 즐거워하여라"고 했다.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그리고 세계 무대에 나가서 활약하고 있는 뛰어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이게 소망이 있게 하고 기쁨이 있게 한다.
 
우리는 교회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 젊은이들의 미래가 없으면 나라의 미래가 없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신앙적인 아름다운 미래가 없다면 그 교회는 미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젊은이의 시기는 길을 개척하는 단계다. 청년의 시기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것들을 더 발전시키거나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이루어내는 야망이 있고 일생의 방향을 정립하는 시기다. 이 귀한 시기에 자신의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적당하게 보낸다면 별 볼일 없는 일생을 살게 된다.
 
젊은이여! 꿈을 꾸라!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생각과 자세로 여러분의 미래를 개척해 가라.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힘을 주실 줄 믿는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일을 하시고 판단하신다는 사실이다. 청년의 시기를 심판하는 것은 사회나 기성세대의 잣대나 세상의 속된 권력이 아니다. 청년의 시기의 모든 영적이고 육신적이고 정신적인 문화나 행동이나 모습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나의 삶과 나의 모든 나의 모든 행위를 녹화하고 계심을 잊지 말라. 그것을 따라 하나님은 조목조목 내가 합리화하면서 행동했던 모든 것들을 심판하시고 판단하실 것이다.
 
여러분의 시기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라. 미래를 개척하는 개척정신으로 살아가라.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을 기억하라.
 
나라와 교회와 가정의 미래인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교회의 장래를 짊어진 우리 청년들에게 마음껏 즐거워하며 마음껏 자신의 길을 개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되,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신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영준목사 / 김포중앙교회


수-이렇게 공경하라
본문: 출애굽기 20:12
찬송가: 579장
 
아무리 강조하고 가르치고 또 배워도 다함이 없는 것이 부모공경의 효도이다. 윤리체계의 중심덕목인 효(孝)에 관한 옛 성현들의 다양한 교훈과 방법론 중에서 오늘 이 시대에 적절한 기준을 찾아본다.
 
첫째, 기쁘고 즐겁게 해드린다.
 
값진 음식 비싼 의복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이다.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최고의 방법은 걱정시키지 않는 것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에 이런 기록이 있다.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멀리 가서 놀지 않는다. 혹 먼 곳에 가 있을 때 에는 반드시 머무는 장소를 알려야 한다.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고대 중국 초(楚)나라 때 도가(道家)에 속하는 노래자(老萊子)는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서 그의 나이 70에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렸다고 한다. 채색이 영롱한 까치 옷을 입기도 했고 물을 한 통들고 오다가 일부러 넘어져서 땅바닥에 누운 채 엉엉 울기도 했다. 또 어버이 곁에서 춤을 추며 새 새끼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와 같이 어린이처럼 어리광을 부린 것은 아버지 어머니를 즐겁게 하여 드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잠언 기자 또한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다.
 
둘째, 형제간에 우애한다.
 
효도하는 것이 종적인 수직관계라면 형제간에 사랑하고 우애있게 지내는 것은 효도의 횡적인 관계이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형제간에 싸우고 다투는 불화이다. 이런 행위가 부모를 거역하는 처사이다. 저들끼리 싸우는데 어느 자식 편을 들겠는가!
 
요한장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자라 했다. 그는 또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하였다. 시편 저자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다 극찬하였다(시 133:1~3). 그 결과 여호와께서 영생의 복을 명하셨다 하였다. 이 말씀은 형제 화목이 가져오는 축복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한다.
 
셋째, 믿음과의 조화이다.
 
요한3서 4절에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함을 듣는 것 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는 같이 가야 한다. 효성이 지극한 자가 하나님 섬기는 믿음이 독실하다. 반면에 교회에서는 잘하면서도 부모에게 잘하지 못한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외면하면서 주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총을 운운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처사이다. 믿음과 윤리 도덕은 조화를 이루어야 건전하고 생명력이 있다. 송강가사로 유명한 정철(鄭澈) 선생의 시조 한 구절을 가슴에 새겨본다. "어버이 살았을 때 섬기기를 다하여라 돌아가신 뒤에 애들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처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늘 효를 행하고 기쁨을 드리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형제와 화목하여 가족 모두가 행복이 넘치도록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재훈목사 / 서부중앙교회


목- 또 하나의 교회는 가정입니다.
본문: 시편 128:1-6
찬송가: 585장
 
영국 사람들은 주일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후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또 하나의 교회로 간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교회에서 은혜 받은 것이 부족하여 다른 교회에 가서 더 많은 은혜를 받으러 가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교회'는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을 말한다. 가정을 교회에 비유할 만큼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영국인들은 모범적인 가정을 구체적으로 내세우고 그러한 가정이 되기를 기도하며, 바라며, 노력하기도 한다.
 
가정은 사랑의 출발점이다. 사랑의 원천이다. 가정에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웃이나 사회에서 사랑을 경험하고 나누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족은 사랑의 매는 끈으로 묶어져 있어야 한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산다. 사랑의 영양실조에 걸리면 마음의 병이 든다.
 
가정은 용서의 출발점이다. 가족 구성원들끼리 잘못을 서로 용서하지 못한다면 이웃이나 사회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용서는 가정에서 배워야 하며 익혀야 한다. 용서는 화해를 가져오므로 인간관계를 발전시킨다.
 
가정은 인간 이해의 출발점이다. 인간이 가장 가깝게 피부를 맞대고 살아가는 곳이 가정이다. 그러므로 가족 구성원들간의 이해는 모든 인간 이해의 기본이 된다. 형제 부모간의 이해가 이웃의 이해를 사회의 이해를 가져오게 한다.
 
가정은 상호 원조의 원천이다. 가족성원들끼리 상호협력과 협조가 없다면 그 가족은 존립하지 못할 것이다. 가족의 어려움은 다른 가족 구성원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어린이라 하더라도 상호 도와줄 일은 있게 마련이다.
 
가정은 민주적 평등의 기초가 되는 곳이다. 무조건 평등한 것이 아니라 기능과 역할에 따라 평등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평등의적 차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억울하게 차등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이루는 부분으로서의 가족성원은 다른 가족성원과 차등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가정은 모든 인간의 삶의 출발점인 동시에 인간 발달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고, 나아가서 인류가 건강해진다.
 
로마제국이 망한 이유 가운데 그 첫 번째가 가정의 붕괴라고 한다. 이혼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가정을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가정 붕괴가 국가까지 멸망시킨 것이다. 반면 지난 2천년 동안 유대민족이 그토록 무서운 시련을 당하면서도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에게 비록 나라가 없었고 영토가 없었어도 신앙으로 하나된 가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건강하고 신실한 가정 가꾸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가정을 또 하나의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허락하신 가정에서 온 가족의 안식과, 은혜, 축복을 함께 나누며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을 온전히 이루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명안목사 / 아산교회


금-지혜로운 자가 되자
본문: 엡 5:15-21
찬송가 : 197장

오늘 본문은 성도가 어떻게 하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첫째,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행할지 주의한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행위에 신중한 사람이다.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행한다. 자기 처지에 넘치게 행동하지 않고, 자기 사명과 때에 맞게 처신한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늘 하루를 분별하며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야할 지 살펴 행한다.
 
둘째, 지혜있는 사람은 세월을 아끼는 사람이다. '세월을 아낀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뒤바뀌어진 우선순위를 바로잡아 수고하는 시간이 헛되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왕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았던 자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왕의 백성으로서, 왕의 잔치에 참여하기로 약속해 놓고도 자기를 위해서 엉뚱한 곳으로 일하러 갔다. 오늘날 우리도 그럴 때가 많다. 내가 먼저 축복받고 내 영이 먼저 살아야 하는데 돈 한 푼 더 버는 것에 얼마나 급한가? 예수님의 기사와 이적으로 은혜받고 귀한 말씀에 감동을 받았음에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려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다. 왜 그럴까? 첫째는 저들이 죄인이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때가 악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구원의 시기를 자꾸 놓칠까? 늘 죄 속에서 살기 때문이요, 죄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계속해서 마귀의 방해와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은 항상 작은 헌신과 순종에서 시작되었다.
 
셋째, 지혜있는 사람은 주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이다.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은 '정신없는 사람, 자기만 아는 사람, 불신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구원의 때를 붙잡지 않는다. 늘 자기생각에 사로잡혀 타인의 조언을 듣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무시한다. 불신의 영이 있어 하나님의 뜻도 받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순종하며 수고하는 사람이다.
 
끝으로 지혜로운 자는 성령충만함을 받는 사람이다. 성령님이 모든 지혜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 중심의 깊은 곳까지 살피시는 분이다. 충만하다는 것은 가득 차서 넘친다, 내 안에서 막힘없이 운행하신다.
 
심령이 연약한 우리에게 주님은 당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렇다. 세상은 내 열심 하나로 다 되지 않는다. 성령님이 도우심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도 이루어주신다. 베드로가 성령충만 받고 그렇게 제자의 길을 갔다. 그가 설교했을 때 성령님은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를 이루셨다. 성령충만함을 구하자. 악한 이 시대에 주의 뜻을 분별하여 주님께 충성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길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서 헛되이 수고하며 애쓰지 않도록 우리의 심령을 깨워 주옵소서. 주님의 뜻을 따라 이 시대를 분별하게 하시고 주님께 충성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재규목사 / 새청교회


토- 어머니의 사랑
본문: 이사야 49:14-15
찬송가: 579장
 
구약의 한 불쌍한 어머니가 있었다. 이름은 리스바. 사울왕의 첩으로 두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사울 왕이 이스라엘을 위해 기브온 거민과 맹세한 것을 파기하고 기브온 거민을 죽였다. 이 일로 인하여 다윗 시대에 3년 동안 기근이 있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죄 때문이라 하셨다.
 
언약은 지켜야 한다. 여호수아 시절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을 속이고 화친을 맺었다. 그 기브온 거민을 사울이 죽였으므로 화친을 파기한 기브온 거민들의 원성이 사울 자손을 향하여 높았고 하나님이 연이어 3년 동안 비를 주지 않으셨다. 이에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너희가 우리를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고 했을 때 "우리를 학살한 자손 일곱을 내어 주면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겠나이다"라고 했다. 다윗이 요나단과 언약한 것이 있으므로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사울의 첩 리스바에게서 난 두 아들을 내어주어 사울의 자손 일곱을 기브온 사람들이 산위에서 목매어 죽였다.
 
여기서 어머니의 사랑을 볼 수 있다.
 
이에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바위 위에 펴고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해하지 못하도록 지켰다. 그 당시 법으로는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6개월 동안 장례를 치루지 못하게 하고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이 되게 했다고 한다. 리스바는 두 아들을 잃고 이 큰 슬픔을 가누지 못하여 죽은 두 아들의 시체를 지키기 위해 6개월 동안 아들의 시체를 떠나지 않았다. 이 슬프고 가냘픈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다윗은 큰 감동을 받고 죽은 두 아들의 시체를 거두어 성대하게 장례를 치루도록 해주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제일 가까운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분이 우리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어린아이를 태중에 안고 자신의 피와 살을 주며 기른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찢어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셨기에 그 사랑과 은혜를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고 또 덮어주는 본능적인 사랑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보혜사 성령같이 자녀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보호하며 기르신다.
 
6ㆍ25때 이북에서 이남으로 피난 오는 길에 한 어머니가 봇짐을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등에 업고 내려오다가 인민군을 만났다. 인민군이 총을 쏘려하자 재빨리 아이를 앞으로 돌려 가슴에 품고 그 위에 엎어졌고 총알은 어머니의 등을 관통하여 피가 흘렀다. 얼마 후 국군이 지나가다가 엎어져 있는 어머니를 들쳐보니 어머니는 죽어 있었고 죽어가면서 흘린 피를 어린아이가 빨고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살리려고 죽으신 피와 같은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시어 잘 키워 주셨는데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함을 용서하옵소서. 부모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함도 회개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덕순목사 / 청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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