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여성 인권 <그녀가 떠날 때>

종교와 여성 인권 <그녀가 떠날 때>

[ 말씀&MOVIE ] 페오 알라닥 감독, 드라마, 15세, 2010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5월 08일(화) 13:44
매스컴을 통해 종종 접하는 소식이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가족의 명예를 매우 중시한다. 대체로 종교적인 가르침이 문화로 형성되고 삶으로 구현될 때는 강한 구속력을 갖게 되는데, 가족의 명예는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는 이슬람 종교공동체 안에서 형성된 문화이며 삶의 가치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강한 구속력을 갖는 전통에 해당한다. 혼전 임신을 했거나 가족이 권유하는 결혼을 거부할 때, 혹은 서구적인 자유분방한 행실 때문에 가족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남자 형제나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한다 해도 그 사회에서는, 비록 논란의 여지는 많을지라도, 범죄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흔히 명예살인(Ehrenmord)라고 하는데, 서구 사회에서 이것은 명백히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이기에 전 세계 여론을 들끓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성영화제에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그녀가 떠날 때'(2010년에 제작되어 한국에는 2012년에 개봉)는 여성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있으며, 특정한 사례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 해도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문제를 다룬다. 가족과 개인, 개인과 전통, 개인과 종교, 개인과 사회의 갈등 등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만큼 스토리 전개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을 잘 극복한 수작이라는 말이다.
 
터키계 독일 태생인 우마이는 터키로 시집을 가서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다. 남편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는 것은 초반부에 전개된 몇 개의 장면들(낙태, 식사, 잠자리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숨이 막힐 정도의 긴장된 생활에서 결혼 생활의 의미를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던 우마이는 아들 쳄과 함께 친정이 있는 독일로 돌아간다. 적어도 가족이라면 자신의 선택을 인정해주고 또 신변을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이혼을 하거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던 이슬람 전통은 우마이의 결정과 가족 사이에 심각한 갈등 관계의 요소로 작용한다. 가족은 우마이 자체를 놓고 고민하기보다는 가족 안에서 일어난 일이 이슬람 전통과 터키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해 더욱 큰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를 가족의 수치로 여긴다.
 
가족들의 배타적인 태도와는 달리 우마이가 가족, 곧 혈연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달랐다. 우마이는 엄마와 여동생 남동생 등을 만나면서 혈연관계에 대한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표현해 보일 정도로 혈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매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데, 결국 가족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의 결혼식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석하려는 우마이의 강한 의지는 가족을 극도로 자극하고 결국에는 아버지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명예살인)을 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녀는 왜 혈연에 집착했던 것일까? 그녀가 가족에게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도 가능할 수 있었고, 마지막 장면의 불행한 결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녀는 혈연을 떠나지 못한 것일까? 자신의 혈연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왜 쳄과 생부와의 관계는 끊어놓으려 했던 것인가?
 
영화는 다문화 상황에서 여성인 우마이가 겪을 수밖에 없는 두 개의 국면을 나타낸다. 하나는 가족 공동체와 이슬람 공동체에서 배제된 이방인이요, 터키계 독일인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태생적으로 독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은연중에 겪어야 하는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이다. 우마이가 가족을 떠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았던 것이나 독일 친구들의 따뜻한 호의에도 불구하고 결코 안착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두 개의 상황이 만들어낸 갈등과 불안을 반영하려는 감독의 의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종교적으로 각인된 전통 문화가 가족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그러한 전통이 특별히 여성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표현해주고 있다.
 
종교는 결코 개인의 삶을 구속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 사례는 많지만, 그것은 결단코 옳지 못한 일이다. 대체로 종교적인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는 가르침과 문화가 사회의 양심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개인의 삶에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동체에서 인간을 배제하는 이유가 되거나 인권 침해의 정당한 이유로 작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낯선 자로서 타자로서 버려진 자로서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런 일이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도록 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현대와 같이 다문화 사회일수록 기독교는 종교적인 관용의 차원을 넘어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어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랑이 이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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