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7~12일

5월7~12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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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02일(수) 18:00

월-자녀들이여!
본문 : 에베소서 6:1-3
찬송가 : 578장
 
부모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것은 좋아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성경적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쉽지가 않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고,때로는 귀찮아서 거역하는 현실이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을 섬기고 공경해야 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첫 계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다. 우리가 일생을 시작하면서 인간관계를 맺는 처음이 부모요,가장 중요한 관계가 부모님과의 관계다. 그리고 내 자녀에게 부모로서 이런 관계를 맺는다. 이 이상 깊은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부모는 하나님과의 관계 다음 순서로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대상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 도리의 첫 번째 계명으로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을 주셨다.
 
그리고 부모는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대리자와 같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양육자로서 대리인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 공경의 가장 구체적인 첫 실천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가장 먼저 언급하셨다.
 
둘째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이 말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다. 순종은 사랑이요,공경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세상적으로는 약하고,오늘 나의 지식수준과 사회적 지위 등에 비해 부모님의 모습이 초라해도,사랑하고 존경하고 존경하는 것,이것이 공경이다.
 
필자가 어릴 때 부모님은 온전한 분 같았는데 장성해지면서 부모님의 약하고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허물과 약점을 감추어 주는 것이 공경이다.
 
또한 공경의 사랑은 순종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얼마나 순종하는가? 순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혹시 잘못된 순종은 오히려 부모님을 아프게 하고,불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와 불의를 분별해 순종할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성실함,진실함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신다. 모든 일에 주님께 하듯 하면 성실히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셋째로 약속의 축복이 된다.
 
부모에게 순종할 때 그것은 주님 안에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된다.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은 자녀들의 순종이고,그리고 그 기쁨은 우리에게 축복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3절)"고 말씀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킬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축복하시고,곧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고,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지혜의 근본 지식의 근본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가 복된 자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첫째 계명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라 하신 그 크신 뜻을 깨달아 순종하고 공경하여,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우리도 하나님의 복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영준목사 / 김포중앙


화-행복의 조건
본문: 계 1:3
찬송가: 559장
 
한 가정이 잘 되고 행복할려면 그 집에서 세 가지 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 우는 소리,베 짜는 소리,그리고 글 읽는 소리이다. 아이 우는 소리는 대를 잇는 종족보존의 역할이다. 베틀소리는 산업을 일으켜서 생계를 이어가게 한다. 글 읽는 소리는 자식을 공부시켜 가문을 빛내는 방편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이러한 가치관은 다르지 않다. 국가적으로 볼 때 직조에서 비롯된 생산과 독서(讀書) 교육은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큰 문제다. 농촌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으니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도 다를 바 없어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수년 전 전주 신일교회는 자녀 넷을 낳으면 성지순례를 보내주기로 당회가 결의했다는데 좋은 묘안이었다. 믿음의 차원,즉 영적인 면에서도 위와 같은 소리가 들려야 가정이 행복하다.
 
첫째,성서 읽는 소리가 나게 하자.
 
재산이 많아도 후대가 무식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가 있다면 믿음의 가정으로서 온전하지 못하다. 잘 사는 교훈이 성서에 있고 복 받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계 1:3).
 
성서 안에는 무궁무진한 삶의 자원이 숨겨져 있다. 역사 이래로 위대한 사람마다 성서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고 성서로 말미암아 절대 다수의 유능한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단테의 신곡,밀톤의 실락원,괴태의 파우스트 같은 걸작들은 모두 성서에서 감동을 받아 쓰여진 작품들이다. 우간다 국왕이 영국을 방문하고 찬란한 문화에 감탄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낡은 성서 한 권을 테이블 위에 갖다 놓으면서 "우리나라는 이 책을 토대로 하여 그 위에 세워졌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둘째,기도의 소리가 행복한 가정을 보장해 준다.
 
기도는 하늘나라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다. 역사학자 칼라일(Carlyle)의 말이다. 군가에 '부모 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고 하듯이 어버이의 기도로 아들 딸의 장래가 약속되고 평안이 지켜진다. 기도 소리에 마귀가 겁을 내고 달아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고,노동이며 믿음의 산업이다. 기도의 리듬은 행복의 자장가이다.
 
셋째,아멘은 기도를 확정짓는 응답의 소리이다.
 
가치기준의 최고치는 행복이다. 만인이 추구하는 행복은 아멘에서 비롯되고 아멘으로 결정된다. 아멘은 기도요,확신이며,감격과 감사이기 때문이다. 아멘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성령 역사가 불타오른다. 주님을 따르는 가정에는 이상의 세 가지 소리가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저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어 감사합니다. 말씀으로 주님의 진리를 더욱 깨닫게 하시고 기도로 환란을 이기게 하시며 아멘으로 받은 은혜를 지켜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재훈목사 / 서부중앙교회


수-가족의 기쁨
본문: 마 12:50
찬송가: 559장
 
예수님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셨다.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들'이라고 하였고,자기와 신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를 향하여 '낳은 아들'이라 말한다. 뵈뵈에게는 '자매'라고 한다. 또한 루포에게는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한다. 이처럼 주님 안에서 유대인,헬라인,종이나 주인이나,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한국인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모두 한 가족이라는 이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는가?
 
우리는 이러한 가족 안에서 다음의 세 가지 안식과 영향력 그리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우리는 가족 안에서 안식을 누린다. 안식을 뜻하는 히브리어로는 '샤바트'라는 말과 '메누하'가 있다. '메누하'란 말은 가정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언어적인 측면에서 가정과 안식이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성서는 말한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여행을 한다고 해도,그것이 오래되면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의 얼굴을 보고 평안히 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소박하고 따뜻한 우리 집,가족 안에 안식이 있다.
 
둘째,가족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줍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로부터 기도하는 사무엘이 나왔습니다(삼상 1:9-10)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디모데에게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있었습니다.(딤후1:5) 개인심리학으로 유명한 아들러는 개인의 생활양식은 이미 유아기에 자신과 첫 관계를 맺는 사람들,즉 가족들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권위적인 아버지에게서 자란 아들은 권위적인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나중에 권위적인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이처럼 가족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셋째,가족은 사랑을 나눈다.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에게 입 맞추고,그를 위해 잔치를 연 것과 같이(눅 15:11-24) 가족 안에는 용서와 사랑이 있다. '버티칼 리미트'란 2000년에 제작된 영화가 있다. 세계 최고의 산악인 로이스는 어느 날 자신의 아들과 딸을 데리고 대원들과 함께 암벽 등반을 한다. 그러던 중 한 대원의 실수로 팀 모두가 자신의 딸 자일에 매달리게 된다. 대원들 모두가 떨어져 죽고 아버지와 아들이 딸의 자일에 매달려 있는 순간 아버지는 자신의 자일을 끊으며 자녀들을 살린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자녀된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 오늘 가족이 함께하는 예배를 통하여 안식과 영향력,사랑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저희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예수님을 보고 믿음으로 한 가족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러한 가정 가운데서 저희들이 안식을 누리고,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주신 주님처럼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한호목사 / 춘천동부교회


목-아름다운 요셉 형통한 요셉
창 39:1-9
찬송가 384장
 
우리 각 사람이 처한 오늘의 현실은 내일을 열어가는 출발점이자,주님을 만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의 현실이 열악하고 고단할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성공자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하고 좋은 조건에서 출발할지라도 그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실패자요 불행한 인생이 된다.
 
본문 6절에서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고 했다. 그러나 요셉은 미모와 아름다움 때문에 곤혹을 치루고 감옥에 간다. 2절에는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요셉이 이방 나라에 팔려가서 종살이를 시작하고 있는 시점이다. 요셉의 인생에서 가장 처절하고 슬픈 현실인데 성경은 '형통한 자가 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경은 말한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니 형통자가 되어 있다고.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은 절대로 그가 처한 현실이나 환경에 의해 그의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은 현실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 던져졌을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는 어떠한 악조건도 다 다스리고 정복하여 새롭게 내일을 열어가게 된다.
 
형통한 자 요셉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가정총무로 일하고 있다. 주인의 재산 관리자로 있다.  요셉은 열심히 일했고 하나님은 요셉을 축복하신다. 그 결과 주인의 재산이 불어나는 복을 받는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형통한 자 요셉에게 복주시는데 주인에게로 혜택이 돌아간다.
 
여기에 중요한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와 신앙의 비밀이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하나님이 형통케 하는 자는 그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금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하시는가이다. 지금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해 주시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하시고 인도해 주심을 기뻐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리하여 요셉을 통하여 그와 주인이 복을 받았다. 지금 당장은 주인에게로 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는 요셉을 위한 축복이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축복이 내 가족,이웃,직장에 임하기를 바란다.
 
무엇이 형통한 삶이며 누가 형통한 자일까? 기름진 요단 동편의 땅을 모두 차지한 롯일까? 조카에게 노른자위 땅을 내주고 험준한 산지에 올라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일까? 나라의 모든 권력을 휘두르며 다윗을 뒤좇는 사울일까? 사울을 피해서 들로 산으로 도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윗일까?
 
오늘의 현실이 비록 험난하고 고단할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자. 요셉처럼 주님의 은혜로 현실을 다스리고 정복하여 형통한 내일을 열어가는 복된 믿음의 삶을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내가 처한 환경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재규목사 / 새청교회


금-말씀으로 양육하자
본문: 딤후3:15-17
찬송: 285장
 
강아지는 태어난 후 그대로 두어도 나중에 크면 개가 된다. 송아지도 태어난 후 그대로 두어도 나중에 크면 소가 된다. 그러나 인간의 자손은 낳아서 그냥 두면 사람이 안된다. 이는 사람다운 사람이 못되는 것을 의미한다.
 
올바른 교육이어야 한다.
 
교회 교육은 잘못 가르치면 지옥 자식을 만들기 때문에 영혼을 다루고 있는 교회에서는 백년대계의 후손을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서는 학교공부 외에 사교육을 시키면서 열성을 쏟고 있지만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한 인성교육은 부족한 것 같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될성부른 나무는 떡 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다. 유년시절의 교육은 그만큼 참 중요하다.
 
유치부 아이들은 하나님의 창조론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러나 유년부로 올라가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고 창조론은 머리와 가슴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이 때 부모는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통하여 창조론과 진화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하여 혼란이 오지 않도록 이끌어야한다.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어른들처럼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예배를 인도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냄비에 깨를 볶으면 이리저리 튀여 나가듯이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고 예배 분위기를 어렵게 만드는 아이들에게 말씀을 먹이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가? 그건 아이들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잘났건 못났건 애정으로 돌보듯이 교사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가리워진 아이들의 마음을 교회 선생님에게는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성경으로 가르쳐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했다. 디모데가 성경을 알았기에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 그는 오늘 세계 모든 교회에 필요한 목회서신을 남길 수 있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에봇을 입고 성전에서 지냈다. 에봇은 아동복처럼 편리한 옷이 아니고 활동하기에 불편한 옷이었다. 불편함을 어려서부터 익히도록 해야 한다. 육체의 불편함을 자연스럽게 배워가고 익히며 성전에서 자란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장차 될 일을 말씀해주셨다. 우리 한국교회에 진리의 말씀을 듣는 어린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주일학교에서는 모든 어린이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십계명,성경목록가를 반드시 암송하는 것이 좋다. 어려서 외우는 것이 빠르고 쉽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 주일학생들에게 성경목록가를 가르치고 성탄절 때 발표하게 했더니 온 교회가 감탄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 성장하여 열매를 잘 맺고 있다.
 
<오늘의 기도>
어린이를 안으시고 축복하셨던 예수님,어린이들이 말씀으로 양육 받아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덕순목사 / 청화교회


토-믿음의 가정
본문: 창12:1-9
찬송가: 559장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서 의롭게 여김을 받았으며(롬4:3) 또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이처럼 성경이 믿음의 본보기로 삼고 있는 아브라함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었을까?
 
첫째,아브라함의 가정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 곧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야 우르는 물질문명이 발달되고 우상숭배가 심한 곳이었다. 사람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처럼 막연히 '네게 보여 줄 땅'이란 것 밖에는 모르는 체 방향 없이 떠나야 할 때는 더욱 두려운 마음이 앞서게 된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은 여호와를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고향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을 이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분리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섭리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이 있어야 한다. 
 
둘째,아브라함의 가정은 항상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그들이 머무는 어느 곳에서든지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우리의 삶은 나그네처럼 때로는 산 넘고 물을 건너는 것과 같이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항상 예배드림으로써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리는 처소에서 우리와 만나셔서 우리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신다.
 
셋째,아브라함의 가정은 복의 근원이 되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 여기서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은 '복의 전달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인류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씨에서 나오게 하시는 큰 복을 내리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것을 바라셨다. 만민이 복을 받고 죄의 용서를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믿음의 가정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복을 이웃에게 전달하며 살아야 한다. 즉,신자와 신자의 가정은 복의 근원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아브라함의 가정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믿음의 가정은 복의 근원이 된다. 복의 근원은 곧 복의 전달자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복의 전달자가 되어 세상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믿음으로써 이것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를 하나님 자녀삼아 주시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의 근원이 되는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의 전달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명안목사 / 아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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