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가 위기다!

양극화가 위기다!

[ 논단 ] 주간논단

김은혜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4월 24일(화) 14:30

한국사회의 위기는 '양극화'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래사회 위험 요소로 소득 양극화와 저출산 그리고 고령화를 꼽았다. 그 중 양극화는 미래의 문제라기보다 이미 심각한 현재의 문제이다. 올 초 한 신문의 신년기획으로 "복합 위험이 온다. 양극화 현상 치유가 우선"이라는 제목을 보았다. 우리 사회 전반이 처해 있는 복합위험을 극복하려면 양극화 현상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0년 동안 인류는 역사상 가장 큰 빈부의 격차를 보여 왔다. 기업양극화, 고용양극화, 소비양극화 등 한국사회를 위기로 몰고 가는 양극화의 중심에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적 양극화가 있다. 양극화는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득분배가 약화되고 오히려 빈곤이 증대되는 현상으로,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재분배정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양극화는 서로 다른 계층 또는 집단이 점점 멀어져서 인식의 차이가 뚜렷이 양분되고 심화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너무 많이 가진 자와 생존이 어려운 사람들 간에 깊어진 간격으로, 평생 살면서 만날 수도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볼 수도 없으며, 따라서 공감부재의 공동체가 된다. 한 복지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고층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문화가 너무 달라서 상호소통이 어렵다고 한다. 양극화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꿈까지 앗아간다. 양극화는 고용 없는 성장과 희망 없는 노동으로 가난한 이들의 삶의 의지를 꺾어 놓고 절망과 분노의 세월을 가져다준다.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꾸만 벼랑 끝으로 내몰고 빈곤우울증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렇게 양극화는 소통의 부재와 대립, 그리고 반목과 갈등, 중산층 붕괴 등으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킨다. 예수님에게 어떠한 계층이나 신분도 운명적이거나 숙명적이지 않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는 동일한 자격이 주어진다.
 
예수님은 그 시대 가장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어부들과 세리, 그리고 직업조차 알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셨다. 예수님은 변방의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세우고 오히려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과 같이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책망과 경고를 서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중심에서 밀려난, 병들고 지치고 힘겨운 사람들 곁에 다가가시고 늘 작은 자들에게 귀 기울이셨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그 시대에 존재하는 절대적 격차와 간격을 허무는 일과 관련된다.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갈라진 둘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막힌 담 허물기 위해 오셨다. 결코 그 간격을 고정시키거나 그 격차를 넓히는 일을 교회가 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은 무한이 유한 속에, 영원이 순간 속에, 초역사가 역사 속에 침투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 영원한 가격을 메우는 사건이다. 격차사회는 예수공동체, 교회공동체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사회양식이다.
 
양극화의 극복은 사람들을 나누는 격차를 줄이고 점점 멀어지는 간격을 메우는 일이다. 그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이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따를 때 가능하다. 교회는 작은 자들을 섬겨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더 낮은 데로 가야 한다. 그 격차를 아래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봉사로 채우는 것 밖에 희망이 없다. 이것이 교회만이 희망이며 복음만이 이 땅의 소망인 이유이다. 더 많은 교회들이 그늘진 곳에서 숨 죽여 흐느끼는 아픔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더 많은 목회자들이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가자. 시대의 신음에 귀를 막은 채 양극화는 치유되지 않는다. 올해는 복음의 능력이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 공동체를 회복하고 치유하기를 소망한다.

김은혜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ㆍ기독교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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