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3~28일

4월23~28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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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20일(금) 09:30

월-행복의 조건
본문: 요한복음 10:7-16
찬송가: 384장
 
영국의 심리학자 캐럴 로스웰과 인생상담사 피트 코언은 행복공식을 발표하였다. 누가 더 행복한 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세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는 개인적 특성으로 인생관,적응력,유연성이다. 둘째는 생존조건으로 건강,돈,인간관계이며,셋째는 더 높은 수준의 조건으로 야망,자존심,기대,유머 등이다.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음의 것들을 강조했다. 첫째,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신에게 시간을 쏟아라. 둘째,흥미와 취미를 추구하라. 셋째,밀접한 대인관계를 맺어라. 넷째,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라. 다섯째,현재에 몰두하고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말라. 여섯째,운동하고 휴식하라. 일곱째,항상 최선을 다하되 가능한 목표를 가져라.
 
그러나 일반적으로 행복지수가 높은 곳은 명상이나 종교가 발달한 곳이 많다고 한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긍정적이고,우울증에 잘 안 걸린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빈국이지만,자신의 종교에 의지하면서 자그마한 것에 만족을 하고 조그마한 것에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물질적 풍요로 인한 행복은 수치적으로는 10억원이라고 한다. 그 이상부터는 물질적으로 더 이상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은 어디서든 동일하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사회발달과 경제발달보다 근본적이다. 예수님이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은 예수님과의 관계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의 물결이 사람에게 넘쳐야 비로소 사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왜 그런가?
 
첫째로 예수님은 양의 문이기 때문이다. 이 문은 오직 하나의 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오직 유일한 길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종교적인 인물들과 같지 않다. 예수님은 단순히 자신이 진리를 아노라고 외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보여 주셨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길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기독교 내에서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께 이르는 길도 없고 하나님에 관한 진리가 어떤 확실한 터가 있을 수 없다.
 
둘째로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신다. 또한 양들을 아시고,양들이 그를 안다. 예수님은 양들이 길을 잘 잃는다는 것도 아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쓸모를 아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 우리를 그의 양떼 가운데로 부르셨으며,우리에게 할 일을 주셨다. 우리는 "주여 제가 무엇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어야 한다. 이렇게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 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물질,명예,권력이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기억하며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민목사 / 의정부시민교회


화-하나님의 타이밍
본문: 왕하8:1-6
찬송가: 301장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을 엘리사가 살려준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 땅에 7년의 기근이 있을 것이니 그 기간을 피해 있으라고 말해준 것이다. 여인은 7년을 블레셋 땅으로 가서 살다가 돌아왔다. 돌아와서 보니까 자신이 소유하던 땅은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었다.
 
여인은 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왕 앞에 나갔다. 여인이 왕 앞에 가던 바로 그 시간에 왕은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어떤 일을 하였는지 왕에게 들려주었다. 바로 그 때 여인이 왕에게 갔던 것이다.
 
여인은 왕에게 살던 집과 땅을 되찾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게하시는 바로 이 여인이 엘리사가 아들을 죽음에서 구해준 여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왕은 신하에게 명령했다.
 
여인의 땅과 집을 찾아줄 것과 그동안 여인의 땅에서 나온 소득도 찾아주라고 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첫째,어려움을 피하게 한다.

여인은 7년의 기근을 피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당하는 어려움도 피하게 도우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시길 바란다. 내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서 걱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고난은 피하게 하신다.
 
둘째,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을 붙여주신다.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어떤 경로를 좇아서 왕의 곁에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마침 게하시는 수넴 여인이 왕에게 나아간 그 때에 왕과 엘리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바로 이 여인의 아들을 엘리사가 살렸다고 말하게 된다. 바로 그 때에 수넴 여인이 왕에게 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수넴 영인을 위하여 게하시를 왕의 곁에 있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우연이라고 말하면 이는 믿음의 말이 아니다.
 
인간에게 우연처럼 보이는 것도 하나님의 필연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을 세우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들도 수넴 여인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축복의 타이밍의 은혜가 임하길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노아는 한 번도 홍수를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말씀에 순종하므로 방주를 예비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고 순종하므로 형통의 복과 회복을 받은것처럼 우리들도 순종하므로 형통한 복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갑상목사 / 참좋은교회


수-인생의 장벽 앞에서
본문: 마태복음 20:29-34
찬송가: 337장
 
언젠가 필자가 제주도에 갔을 때,한라산정상에 올랐다. 마침 수학여행을 온 고교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학생들의 옷 색깔로 산이 온통 형형색색이었다. 그런데 형형색색 옷 색깔과는 너무나 달리 얼굴은 하나같이 무표정이었다. 뭐가 그리 힘든지 산을 오르는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은 없고 조금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옆으로 여러 명의 할머니들도 열심히 산을 오르고 계셨다. 대부분 허리는 구부러졌고 다리는 오자로 휘어있었고 걸음은 불안해 보였지만 모두들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싱글벙글이셨다. 그날 정상엔 바람이 거세어 몸이 밀릴 정도였는데 무려 5시간을 걸어서 산에 오르신 할머니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때 할머니들이 속한 산악회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천하통일 산악회'였다. 순간 얼마나 웃었지 모른다. 천하통일 산악회 할머니들 앞엔 한라산 정상도,C급 난코스도 세찬 바람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본문을 통해 인생의 장벽을 뛰어넘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다. 그들은 맹인이었다. 맹인들에게 희소식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두말할 것 없이 보는 것이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맹인들의 간절한 소원도 마찬가지였다. 일구월심 그들은 눈뜨기를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평소처럼 길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길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맹인들에게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왜냐면 이런 날은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욱 큰 소식이 들려왔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그들은 더 이상 구걸할 생각이 사라졌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힘을 다해 소리질렀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의 외치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거기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들었고 사람들은 맹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더욱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불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만나주실 때까지 소리쳤다.
 
이 맹인들을 보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했던 야곱이 생각난다. 인생의 장벽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야곱. 처자식도 20년 동안 애써 벌었던 수많은 재물도 어쩌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 인생의 장벽 앞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그 인생의 장벽 앞에서 그는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어떻게 해야 하느냐고,당신이 축복하지 않으시면 가게하지 않겠다고 간절히 매달렸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져주신다. 야곱과 맹인들은 예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 하나로 인생의 장벽을 넘어섰다. 이들의 믿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져주실 마음을 갖게 했고,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멈추어 선 예수님께선 맹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인생의 장벽을 만났을 때 그 장벽 앞에 주저앉는 인생이 아니라,그 장벽을 믿음으로 뛰어 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여리고성의 맹인들과 같이 얍복강의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인생의 장벽을 뛰어 넘어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배성태목사 / 명선교회


목-가치 있는 말
본문: 마 12:36-37
찬송가: 304장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는 말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
 
첫째,믿는 자는 말의 권세가 있다.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이라고 했다(욥 4:4). 본문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말씀하고 있다.
 
1864년에 미국의 한 청년이 1마일(1.6km)을  4분 50초에 뛰는 세계기록을 세웠다. 그 후로 1백년이 지나도록 누구도 이 기록을 깨뜨리지 못했다. 신(神)이나 짐승이 아닌 이상 사람이 1마일을 4분내에 뛸 수 없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1945년에 어떤 외과 의사가 인간도 1마일을 4분내에 뛸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있은지 2년 후에 1백27명이나 4분내에 1마일을 뛰었다고 한다.
 
인간의 힘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체력(인간의 한계성의 힘),지력(자기 암시적 초능력의 힘),신력(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이다. 위대한 성공자들은 이 세 가지 힘을 개발한 사람들이다. 말의 힘을 개발하라. 위대한 기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둘째,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가 된다. 그러나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고 하셨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해야 한다.
 
셋째,행복해지는 말을 해야 한다.
 
행복을 주는 말은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정다운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멋지게 열어준다. 우리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해야 한다. 짧지만 이런 한마디 말이 우리를 행복을 준다. '주안에서 사랑합니다. 고마워,미안해,잘했어,기도해줄게,넌 항상 믿음직해,잘 될 거야, 네가 곁에 있어서 참 좋아'라는 말들이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가장 무서운 파괴의 도구는 폭탄이 아니고 사람의 말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늘 지켜 주시며 긍정적인 입술로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말로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시며 주님을 닮은 긍정적인 믿음의 입술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홍만목사 / 안민교회


금-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마 7:7-11
찬송가: 28장
 
좋은 명품가방을 사거나 좋은 옷을 사서 입으면 잠깐 우리 마음에 일시적으로 만족감이 올 수는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 항상 좋은 것을 채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인생에 필요한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신다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마음은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 세상의 부모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일까 보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비록 우리가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자녀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는 종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좋은 옷을 가져오고,좋은 짐승을 잡고…. 아버지의 명령은 모두가 좋은 것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빨리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신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에 좋은 것으로 채워주셔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실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시이시다. 사도바울은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기를,"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아들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자기의 외아들까지 내주신 분이 다른 것들이야 왜 주지 못하시겠는가?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 속에 사랑이 가득한 말씀,너무 다정한 말씀,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말씀이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주시지 않겠느냐?"에서 구하라는 의미는 첫째,가정과 자녀의 필요를 구하라는 의미이다. 필요한 것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신다. 가정예배의 중요성이 여기 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주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면 반드시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한,하나님의 필요를 구하라는 의미도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거룩함을 구하게 되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필요한 그 모든 것 재물,지위,직장,학교,건강 등 삶의 모든 필요한 것을 다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가정예배에 성공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가정되기를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씀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가정들을 축복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성진목사 / 풀향기교회


토-하나님 앞에
성경 : 디모전서 6:11-16
찬송 : 314장

사람이 누구 앞에 선다는 것은 상당히 긴장되고 어려운 것이다.

13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생애를 한 마디로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생활'이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이 예수님의 생애를 결정지은 것이었으나,사실은 하나님 앞에 서서 사신 것이 예수의 생애였다는 뜻이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서서 사는 사람아'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아'라는 뜻이다.
 
오늘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 서서 산다는 것을 몇 가지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첫째,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로마서 10장 8절은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고 했다. 이 말씀은 구약 신명기 30장 14절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은 모세로부터 바울까지,구약과 신약을 걸쳐 일관된 사상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산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 앞에 서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이다.
둘째,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의 자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18절에서 인간의 타락상을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다. 구원이란 쉽지 않다. 구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곧 하나님 앞에 서서 사는 자가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서 차이가 날까?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 욥은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며 서 있다"라고 고백했다. 그 겸손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그것이 바로 참 신앙의 자세이다.
 
셋째,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 사상의 특색이며 바울 신앙의 중심이다. 로마서 14장 8절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한 것은 나의 소속,나의 현 주소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주님 곁에서 절대 떠날 수 없다"라고 하는 각오,"죽으나 사나 내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하는 결단,"나는 이미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은 내 안에 계시다"라는 신앙 고백이 곧 하나님 앞에 서서 사는 모습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소리에 민감하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오늘도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말 한마디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말씀에 민감하고 순종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영숙목사 / 예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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