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21일

4월16~21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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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16일(월) 10:29

월-네 앞에서 가시며
본문 : 신명기 31:1-8
찬송가 : 347장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광야로 나올 때 그들 앞에 어려움이 닥쳐오면 사람들은 지도자 모세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했다. 지도자는 앞장서서 나아가야 한다. 앞장서서 나간다는 것은 지도자의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에게 그 힘들고 막중한 지도자의 사명을 맡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고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시며, 떠나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할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담대하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보게 된다.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본문 8절에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라고 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는 모세나 여호수아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진행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갔다. 요단강을 건널 때는 법궤를 앞세우고 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 앞서 나아가신다는 의미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앞에 서서 우리들을 이끌어 가신다. 우리들의 삶이 진정으로 복된 삶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우리들의 삶을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신다는 것은 우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시편 23편에서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 했다. 목자는 양의 인도자이다. 양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리석은 동물이다. 그러므로 양은 목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고 목자만 바라보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들이다.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앞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고 했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모든 것이 형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도와주실 때 계획하는 일들이 형통하게 될 것이다.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도 그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오늘도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시고 함께 하시면서 우리들의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따라 가자.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책임져 주신다. 함께 하시면서 형통케 해 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겨 드리지 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며 제 멋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시고 함께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영숙목사 / 예원교회

 


 

화-아버지의 마음
본문: 눅15:11-14
찬송가: 382장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품을 떠난 자녀가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의무는 무엇일까? 바로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신6:7). 아버지는 자녀를 훈계해야 하며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한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17:9-11)"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범사에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5:10)하셨고 행함이 있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탕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께 돌아와 무릎을 꿇듯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겸손의 미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길을 잃은 자녀가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믿음의 길을 잃음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이권를 탐함으로 영적 길을 잃을 수 있다.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1:19). 자기를 사랑함으로 영적 길을 잃을 수 있다(눅17:33). 또한 교만함으로 영적인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기쁨을 얻는다.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 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30:10)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품으로 돌아와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자녀의 잘못을 용서하시기 원하신다.
 
톨스토이는 "서로 용서하라. 이 세상에서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용서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용서할 때 자신의 과실도 용서받게 된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5). 용서를 통해 성도간의 회복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자.

<오늘의 기도>
탕자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것처럼 주님의 품을 떠난 자녀들이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가 되어 어버지 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시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홍만목사 / 안민교회

 


 

수-기도와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자
본문: 시편 119:103-111
찬송가: 199장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간절한 소망이다. 그러나 자녀를 생각처럼 잘 키우는 것은 쉽지않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로 키우면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
 
첫째,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자
 
필자는 1990년 11월 25일 원당에 한 상가에 보일러도 없는 건물의 60평을 얻어 40평은 교회로 20평은 사택으로 시작했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둘째가 3학년 막내가 1학년이었고 개척 당시 교인은 필자 식구 5명 뿐이었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었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주기도문과 시편 23편, 100편 등 성경구절을 매일 한절씩 외우게 했다. 예배인도는 아내가 하고 아이들에게 매일 돌아가면서 기도를 시키고 말씀을 외우게 한 후 홀수날은 필자가 짝수날은 아내가 기도를 했는데 아이들은 부모가 기도할 때 거의 잠을 잤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도(교회건축 등)를 자녀들이 하였으며 그 기도가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둘째,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한 축복
 
아이들을 키울 때 방학이면 매일 식사시간에 성경책을 뒤진다고 바빴다. 제일 짧은 성경구절을 찾와 외워야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큰 아들이 그네를 타면서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늘 성경말씀을 들려주고 외우게 했더니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목사가 되어 대학을 졸업 후 미국에서 영어설교를 하고 있다
 
둘째는 성경암송을 시켰더니 외우는 것을 잘하게 되었고 호주의 원어민 자격증, 태솔자격증을 따고 미주장신대에서 2년 연속 설교대회에서 1등을 하고 설교를 잘하여 교인들과 목사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막내는 유치원을 다닐 때 첫날 '가'를 배우고 와서 기드온 성경 '가'에 동그라미를 다 그려놓고 다음날 심방 갔다오니 '나'를 배워서 성경책 '나'에다 다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그렇게 한글을 다 깨닫게 되어 이야기를 하는데 지난 주 전도사님이 예수님께서 물 위에 걸어올 때 베드로가 물에 빠진 내용을 이야기 하면서 성경에 쓰여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호주 힐송 신학을 졸업할 때 졸업생 대표로 자기의 꿈과 비전을 발표하였고 힐송 교회에서 콩희목사 컨프런스에서 동시통역도 했다. 지금은 웨슬레 신학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있으며 시드니 제일교회에서 5년째 사역을 하고 있다.
 
세 아들이 목회자의 길을 가게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가정예배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한 것은 믿음의 배필을 위해 기도했는데 두 자부가 목사님 딸이요 막내의 여자친구도 목사님 자녀이다. 어릴 때 가정예배를 드린것이 자녀들이 주의 길을 가게했음을 감사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이 어릴 때부터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여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 받는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성진목사 / 풀향기교회

 


 

목-삶의 중요한 원칙들
본문: 마태복음 26:47-56
찬송가: 414장
 
요즘 심심찮게 듣게 되는 우리 사회의 탄식은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해주는 풍토가 상실된 것도 문제지만 내게 어른다움이 있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어른이란 '자신과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된 사람'을 일컫는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앞가림이나 나이 값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성인아이, 어른아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참된 어른을 필요로 하는데,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선 예수님께서 친히 몸에 익혀 두셨던 다음의 삶의 중요한 원칙들을 우리도 몸에 익혀야 한다.
 
첫 번째 원칙은, 예수님은 칼을 쓰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실 때 대제사장이 보낸 군사들이 가룟유다와 함께 겟세마네로 몰려왔다. 그들은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상황은 예상과는 달리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너무도 순순히 체포에 응했기 때문이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고 하신다. 개인적 폭력이든 집단적 폭력이든 국가적 폭력이든 예수님은 일체의 폭력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두 번째 원칙은, 예수님은 힘이 있으셨지만 그 힘을 쓰지 않으셨다. "내가 기도하면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53절)"라고 하시면서도 그 힘을 쓰지 않으셨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로마 군병들의 비난과 조롱에도 주님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을 있는 대로 동원한다. 이렇게 자신의 힘을 과시고 모든 인맥을 동원한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사람은 아주 약하고 유치한 사람이다.
 
세 번째 원칙은, 예수님은 우선수위가 분명하셨다. 우선순위는 어떤 목표나 과정 혹은 행동을 함에 있어 무엇보다 먼저 배려하는 것을 말한다. 다양성이 많고 선택의 폭이 넓은 세상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정해야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행동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우선순위가 분명하셨다.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면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겠지만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모든 원칙들을 따라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이 원칙을 따라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사랑의 폭탄을 맞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폭탄을 맞을 때 하나님의 그 사랑이 내 안에서 나를 움직이고 이웃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하나님 사랑의 폭탄을 맞으면 사람은 달라진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 부활의 기쁨과 성령강림절까지 기쁨의 50일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전되어 우리 삶에 소중한 원리들을 세우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폭탄을 맞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 사랑의 은혜로 우리 삶에 예수님의 원칙들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성태목사 / 명선교회


 

금-산 소망
본문 : 베드로전서 1:3~9
찬송가 : 95장
 
프랭클 박사는 나치 수용소의 처참한 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유대인의 수용소의 관찰기록을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이란 저서로 남겼다. 그는 "나치 수용소에서 말할 수 없는 잔인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과 비 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희망이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수용소에 있는 인간상을 이렇게 구분하기도 하였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 졌다. 소망을 끝까지 가진 사람이 끝까지 살아 남았다. 자기의 소망을 이미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이웃들을 도와 주고 그들로 하여금 소망을 갖도록 격려했다. 물론 그들은 몸도 마음도 가장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
 
몰트만은 죄를 정의하기를 '희망을 갖지 않은 것, 체념, 게으름, 비애'라고 하였다. 그래서 몰트만은 산다는 것은 용기를 갖는 것, 희망을 갖는 것이라 하였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소망만이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이다.
 
'산 소망'은 죽은 소망과 반대되는 말이다. 베드로 서신의 배경은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 신앙 생활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의 서신이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산 소망이 필요하였다.
 
우리에게 산 소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3절 말씀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하였다. 곧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그러면 산소망의 내용은 무엇일까? 먼저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는 것이다. 본문 3절과 4절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라고 하였다. 유업이란 상속자가 받는 재산이다. 세상의 기업은 시간과 함께 썩어질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의 유업은 결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으로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주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인정을 받기 위하여 이 땅에서 수고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바로 주님 앞에 있다.
 
마지막으로 산 소망의 능력은 무엇인가? 6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곧 산 소망의 능력은 기뻐하는 삶에 있다. 또한 산소망의 위력은 대단하다.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산 소망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고,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것 역시 소망을 가져다 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오만함으로 나타난 인간의 절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구원과 산 소망이 있음을 알려주심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썩지 않고 시들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는 산 소망 안에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민목사 / 의정부시민교회

 


 

토-죽은 믿음에서 산 믿음으로
본문 : 에스겔 37:1~9
찬송가: 183장
 
오늘 말씀은 포로로 끌려가는 마른 해골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키 위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의 눈을 열어 환상을 보여주셨다.
 
에스겔이 환상을 보니 해골들이 골짜기에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누구인 줄 아느냐? 그들이 바로 나의 백성들이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재차 물으셨다. 주님은 마른 뼈 비유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
 
첫째, 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영적으로 볼 때 과거나 현재나 공동묘지 무덤과 같은 인생들은 허물과 죄로 인해 죽어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쓸 때 에배소서 2장 1절에서 그들은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다고 했다. 겉모습은 살아 있지만 영이 죽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해골처럼 죄악에서 깨어나고 다시 살아나는 방법은 하나님의 생명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둘째, 산 믿음은 생명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 가운데 "뼈들아 제 위치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마른 뼈와 같은 죽은 인생들에게 자기의 자리, 위치, 본분을 찾아서 돌아가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죽은 뼈다귀처럼 흩어져 있다.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세상의 욕심에 이끌려 죄에 눌리며 살아간다. 근래엔 성도들이 교회 밖으로 빠져나가 자기 편한대로 신앙생활을 한다.
 
셋째, 산 믿음은 서로 연합하는 것이다.
 
사람이 성장하거나 교회가 자랄 때도 힘줄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 그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운행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교회 조직이 연합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넷째, 산 믿음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이다.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8절) 아무리 조직과 프로그램, 건물이 아름다워도 그 속에 성령의 기름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14절 말씀에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살아난다.
 
오늘 여러분과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가 다시 살길 원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려야 한다. 그때 성령이 주시는 감동대로 순종할 산 믿음의 역사가 있을 줄 믿는다.
 
<오늘의 기도>
성령으로 살아계셔서 죽은 인생을 살리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 마른 뼈 같이 죽은 믿음이 생명 넘치는 산 믿음으로 소생하길 원합니다. 성령으로 오셔서 생명의 생기를 주시며, 순종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지갑상목사 / 참좋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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