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라이어 다윗'

'아웃라이어 다윗'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젊은이를 위한 팡세

조정민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27일(화) 16:51
대체 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을까. 우리 중에 누가 다윗만큼 무거운 죄를 지었는가. 적어도 모태신앙인이라면 다윗이 지은 죄의 반이 아니라 십분의 일도 짓기가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위를 허락했을 뿐 아니라 그의 가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다. 결코 흠이 없어서도 아니고 죄가 가벼워서도 아니라면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한 때문이고, 하나님을 누구보다 중심에 모셨던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을까. 인간의 편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일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당연히 그렇다는 표정이다. 인간은 죄가 전공이고 하나님은 용서가 전공이니까!
 
다윗을 빚어가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가면 엄청난 성공과 극심한 고난을 만난다. 골리앗과 다윗! 다윗은 골리앗을 만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기회였고, 골리앗을 이긴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었다. 골리앗을 만날 때 다윗은 이미 물맷돌의 아웃라이어였지만, 골리앗을 이긴 뒤에는 인생의 아웃라이어를 향한 광야의 여정에 오른다. 다윗이 물맷돌 한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물맷돌과 씨름했을까.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보면 적어도 만 시간 이상을 투자했으리라. 하루에 세 시간씩 십여 년의 세월을 쏟아 부어야 비범한 경지에 오른다. 운동 선수이건 연예인이건 예술가이건 예외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기능의 아웃라이어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다윗은 네게브 광야의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십여 년의 세월을 다시 보내야 했다. 사람을 쓰러뜨리는 물맷돌 아웃라이어를 넘어 사람을 세우는 목자 아웃라이어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몸을 숨겼던 아둘람 동굴을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너진 사람, 절망의 사람, 세상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이지만 다윗의 품 안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공동체를 이룬다. 다윗이 세워지는 동안 사울은 넘어지기를 거듭한다. 아웃라이어 다윗은 사울을 제 손으로 제거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 맡겨드린다. 놀라운 성숙이다. 끝내 아웃라이어 다윗은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도 해하지 않았고, 하루 아침에 변절한 시므이의 저주조차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웃라이어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빚어져 간다. 나단의 지적에 지체 없이 무릎을 꿇었고 하나님의 경고에 변명 없이 회개했다. 다윗은 이제 실력과 영성 두 날개를 단 진짜 아웃라이어가 되었다. 타고난 것일까. 어디서 시작된 섭리일까. 우리 모두 그 답을 안다. 다윗의 뜨거운 사랑이다. 하나님을 향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양을 치면서 곰과 사자가 나타나도 달아나지 않고 양떼를 지켰고,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아무도 상대할 엄두를 내지 않는 골리앗을 향해 달려갔고,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불 같은 화를 낼만한 누군가의 비난에 침묵했다. 아웃라이어 다윗의 실력과 영성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매였을 따름이다. 기독교가 이처럼 조롱거리가 된 세상에서 누가 아웃라이어 다윗처럼 실력과 영성을 갖고 세상을 향해 달려갈 것인가! 예수님을 내 목숨보다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아닌가!

조정민목사/CGNTV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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