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진정한 특권'

'젊음의 진정한 특권'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젊은이를 위한 팡세 <4>

조정민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1월 30일(월) 12:01
젊음은 아무래도 속도 편이다. 좀처럼 느림을 견디기가 어렵다. 핸들을 잡으면 과속을 일삼는다.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면 속전속결이다. 물론 나이 들어도 속도를 즐기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어떻게 젊은이들을 이기랴. 속도는 젊음의 특권 같기만 하다. 속도를 내면 어떻게 달라지나. 시야가 좁아져서 더욱 목표지향적이다. 속도를 내면 낼수록 시야는 좁아져서 점점 더 주변에 눈길을 줄 수가 없다. 눈길을 돌리는 순간이 곧 사고의 순간이다. 과속의 한가지 이점이 있다면 바로 집중과 몰입이다. 그러나 문제는 좀처럼 주위에 시선을 줄 수 없다는 점이고,과정의 중요함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나이 들면서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목표를 다 이루어서도 아니고,목표를 포기한 때문도 아니다. 여전히 시선을 목표에 두고 있지만 점점 주변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눈에 띄지 않던 것이 눈에 띈다. 목표지점 못지 않게 목표로 가는 도정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더구나 그토록 중요해 보이던 목표가 반드시 이르러야 할 목적지인지를 자주 되돌아보게 된다. 목표에 이르기 위해 남은 인생을 다 바칠 것인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반복되는 이 의문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어쩔 수가 없다. 누구이건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고 누구라도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음이 끝인가. 본질적인 질문이자 모든 가치의 뿌리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설정된 목표는 좌표를 잃은 것이다. 당연히 한 순간 방황하고 있는 자신과 맞닥뜨린다. 방황하는 자신의 발견은 목표와 자신이 함께 흔들리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변함 없는 것이 없다면 인생은 어디에도 의미의 닻을 내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반증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은 인간 이상의 의미로만 답할 수 있다. 
 
왜 믿음이 힘인가. 왜 믿음은 신념과 다른가. 왜 신앙은 생각에서 출발할 수 없는가. 불변과 가변의 차이다. 우리는 변하는 것에 기준점을 세울 수 없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에서만이 출발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움직이는 곳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수 없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곳만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믿음은 바로 불변하는 기준점의 발견이고,부동하는 목적지의 설정이다. 그 순간이 방황의 끝이고 새로운 시작이고 거듭남의 순간이다. 그래서 믿음은 능력이다. 생각하는 힘,생각을 의지하는 힘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불안이다.
 
젊음은 아무래도 속도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빨라도 목표가 흔들리면 헛일이다. 아무리 일찍 도착해도 불변의 가치를 놓쳤다면 오르지 않아야 할 산에 오른 셈이다. 답은 다시 하산하는 길이다. 새로 시작하는 길이다. 부동의 목적지를 향해 새로 출발하는 길이다. 아무리 늦어 보여도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이처럼 돌이킬 여유가 있다는 것이… 젊음의 진정한 특권이다.

조정민목사 / 온누리교회,CGNTV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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