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함일까?

무엇을 위함일까?

[ 논단 ]

강교자 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0월 21일(금) 15:32
얼마 전 아프카니스탄에 파송된 단기선교팀의 납치사건으로 큰 곤경에 처한 교회를 향해 많은 이들이 정죄하고 돌을 던질 때에 교단도 다른 한 교회는 특별헌금 1억을 전달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부럽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분당에 있는 그 교회를 찾아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진지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깊은 감동을 느끼며 예배를 드렸다. 설교 후 광고시간이었다.
 
"지난 한 주간 특별새벽기도 시간에 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여러분들이 드린 헌금 전액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우리 지역의 200 세대의 1년 분 의료보험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느꼈던 충격적인 감동은 내 안에서 계속하여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며, 또 꿈을 꾸게 해 준다. 1년치 의료보험료를 주님의 이름으로 선물받은 2백세대 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교회를, 기독인들을, 그리고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느꼈을까? 기독인인 것이 기쁘고 자랑스러웠으며, 우리나라에 이런 교회가 있는 것이 감사했다.
 
이 교회가 다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 전세를 놓으시는 분들은,우리 교회 성도님들만이라도 지금 전세 값을 올리지 말아주세요. 이것이 심각한 전세난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는 설교 말씀이 신선한 감동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전해지고 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상상을 했다. 여리고성의 라합이 자기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려놓았듯이,전세를 놓는 전국의 기독인들이 '우리 기독인들은 지금 전세 값을 올리지 않습니다'라는 표시를 집 앞에 걸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 어떻게 될까? 어떤 영항력을 발휘하게 될까? 세상은 기독인들을 향하여 무엇이라 할까? 상상의 날개가 한없이 펼쳐진다.
 
뉴욕의 월가에서 시작된 분노의 함성이 우리 귀에도 들려온다. 가진 사람들의 끝없이 추악한 탐심으로 온 사회가 불안하고 어지럽다. 이런 때를 위한 기독인들의 책임은 무엇일까? 이런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야하는 선한 도구들인 기독인들의 책임을 깊이 고민하게 된다.
 
신실한 기독인이 된 한 마부가 오랜 기도 후에 양반 주인에게 말했다. "나으리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고 구원 받으셨으면 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화가 난 주인은 "야,이놈아,네가 예수를 잘 믿으면 너 같은 쌍놈이 양반이라도 된다드냐?"고 소리 질렀다. "아닙니다. 제가 예수를 잘 믿으면 제가 양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제가 더 좋은 마부가 되어 나으리를 더 잘 모시게 될 것입니다"라는 마부의 답은 바른 신앙관과 신앙적 삶의 뿌리를 깨우쳐준다. 하나님을 잘 믿는 기독인은 이웃과 세상에 혜택을 끼치는 축복이 된다.
 
곁에 두신 이웃들에게 유익함을 끼치는 교회와 기독인들 때문에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맛나고 밝아질 수 있다면,우리를 우리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 자신만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에서 돌이키는 것만이 한국교회가 살고,한국사회를 살릴 수 있는 진정한 교회로 세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철로변의 모든 구조물은 철로를 위함이고 철로는 기차를 위함이며 기차는 승객을 위함이다. 한국교회와 기독인들에게 넘치도록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무엇을 위함일까?



강교자/한국YWCA 직전회장ㆍ한국여성인력개발센타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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