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보는 '눈'

자신을 보는 '눈'

[ 논단 ]

이용남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10월 05일(수) 11:18

우리 속담에 몸이 천 냥이면 눈은 칠백 냥이란 말이 있다. 눈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도 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는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은 보는 것을 좋아하고, 보는 것을 중요시 한다. 오늘에 와서 시각 문화가 크게 발달된 이유도 사람들이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고, 바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거미줄을 거미줄로 알 수 있는 사람이 곧 위대한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다.

제대로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큰 것을 큰 것으로 보고,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작은 것을 지나치게 크게 평가하는 과대평가로 실수하거나 큰 것을 작은 것으로 평가하는 과소평가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제대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인간은 세 개의 눈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밖을 보는 눈이다. 그것은 자연과 객관적 대상을 보는 눈이다. 둘째는 안으로 향하는 눈이다. 그것은 자아와 내면의 세계를 보는 눈이다.

그리고 셋째는 위를 보는 눈이다. 하나님과 신앙의 세계를 보는 눈이다. 이런 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바른 삶과 가치관이 형성된다.

오래전 탄광에서 노새로 무거운 짐을 운반하게 하였다. 그런데 며칠마다 하루씩은 그 노새가 쉬게 했다고 한다. 물론 피곤한 노새로 쉬며 힘을 축적하게 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노새를 계속 어두운 탄광에서 일을 시켰더니 눈이 멀기 때문이었다. 볼 수 있는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눈은 멀어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볼 수 있는 눈을 최대한 활용하여 보아야 한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의 눈도 멀어 볼 수 없게 된다. 밖을 보는 눈만이 아니라 안을 보는 눈과 위를 보는 눈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밝고 값진 인생을 살 수 있다.

인간은 안을 드려야 보는 눈, 즉 자아를 드려다 보는 눈은 지극히 관대하고 편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는 지나치게 잔인한 눈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만은 배려와 용서의 눈을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수님께서도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아를 보는 눈이 밝아야 편견과 오해 없는 바른 눈을 가질 수 있다. 들보 있는 눈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들보를 빼야 한다.

들보를 뺀 깨끗한 눈으로 바르게 보기 위하여 위를 보는 눈이 먼저 떠져야 한다. 즉,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과 신앙의 세계를 향하는 눈이 열려야 한다. 이 눈이 열릴 때 진정 자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된다. 이 눈이 열리면서 눈물로 잘못된 들보가 빠지게 된다.

위를 보는 눈이 있어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아픔이나,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라고 하셨고 스데반은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순교하였다. 제대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옛날, 어떤 왕이 매일 여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눈부신 의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뽐냈다. 백성은 어떻게 살든지 왕은 자기만을 생각했다.

어느 날 못 마땅하게 생각한 시종이 왕이 매일 들여다보던 거울을 치워버렸다. 다음날 왕이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거울을 찾았으나 거울은 보이지 않고, 거울이 있던 자리의 창문을 통하여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지치고 굶주린 모습이었다. 창백한 여인과 굶주린 아이를 보았고, 먹을 것을 찾으려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과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들도 볼 수 있었다.

왕은 그제야 자신의 신분을 깨닫고 자기의 화려한 의복을 벗어버리고 평민들이 입는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백성들 가운데로 나아가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이렇게 보는 눈이 열리며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고 행동이 달라진 것이다. 이웃의 잘못을 보는 눈을 크게 뜨려하지 말고 먼저 하늘을 우러러 보며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고 제대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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