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천문학자의 혜안

어느 천문학자의 혜안

[ 예화사전 ]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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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13일(수) 11:02

정말 깜짝 놀랐다. 뭐랄까? 잠자고 있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섬광처럼 내리 꽂히는 통찰력에 눈이 활짝 열렸다고 해야 할까? "조선시대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 속 남녀의 데이트 시각은 1793년 8월 21일 자정."(조선일보 2011.7.2.)

신윤복의 활동 시기는 미스터리였다고 한다.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1758년에 출생했다는 것 단 하나뿐이고, 그 외 활동 기록은 전혀 없으며, 당연히 작품들의 정확한 제작 시기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천문학자(이태형-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겸임 교수)가 밝혀냈다.

'월하정인'이란 그림은 나도 수십 번 봤지만, 단 한 번도 달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저 담벼락 옆에 한 쌍의 남녀가 길을 재촉하고 있는 장면만 내 눈길을 끌었을 뿐이다. 중치막(벼슬하지 못한 선비가 입는 겉옷)을 입은 남자가 초롱불을 들고 여자에게 빨리 가자고 말하는 듯하며,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은 부끄러운 듯하지만 분명 남자의 뜻에 따르려는 태도가 드러나 보이는 '남녀 상열지사'를 다룬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림 속 발문은 그 시각이 밤 12시 경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 주고 있다. '月沈沈 夜三更(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 兩人心事 兩人知(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

이태형교수는 그 그림을 봤을 때 달의 모양이 이상했다고 한다. 우선 처마 중간까지 내려온 달은 남중고도가 가장 낮은 여름임을 나타내고, 초생달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은 월식일 때만 가능한 모습이라고 한다. 천문학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추론이다. 설사 천문학적 지식이 있어도 예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그림이 눈에 들어왔겠는가! 그는 승정원 일기에서 신윤복 시대에 두 번의 월식 기록을 찾아냈다. 1784년 8월 30일(26세)과 1793년 8월 21일(35세). 그런데 1784년에 있었던 부분 월식은 관측이 안됐고, 1793년 월식은 밤 2경부터 4경까지 정확하게 관측이 됐다는 기록을 토대로 그림 속의 달은 부분월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월하정인' 속의 달에 대한 의문제기가 많이 있어왔던 모양이다. 심지어 어떤 미술 전문가는 자정 무렵에 뜨는 초승달은 없으므로 신윤복이 잘못 그려 넣은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모든 추론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무튼 그림 속 미스터리를 밝혀낸 그 천문학자의 탁월한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며, 나에게도 그런 영감어린 혜안을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조인서 / 목사 ㆍ 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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