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미를 넘어 치유와 화해로

아노미를 넘어 치유와 화해로

[ 논단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6월 16일(목) 10:26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껭은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적 가치나 도덕적 기준이 없는 사회적, 개인적 무질서와 무규범, 불안정과 혼돈, 해체상태를 일컬어 아노미(anomie) 현상이라고 했다.

사회병리학의 기본개념 중 하나인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되면, 삶에 대한 자신감과 만족도와 행복감이 저하되고 삶의 가치와 목적의식을 잃게 되며 무력감과 자포자기에 빠지게 된다.

또한 불안, 과로, 갈등, 억압 등의 감정체험으로 인한 노이로제 현상이 일어나며, 비행과 범죄 등의 일탈행위를 일삼게 되고 끝내 자살과 살해와 같은 극단적 선택도 주저하지 않게 된다.

한국사회는 태생적 '같음'에 익숙하여 '다름'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일원적 사고방식과 이로 인한 외부세계나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Xenophobia)을 지닌 사회이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이분법적 흑백논리와 결합되어 이념적 양극화를 초래하고 다양한 국면의 대립관계를 형성한다.

오늘 한국사회를 휘몰아 치고 있는 남북갈등, 보수와 혁신의 남남갈등, 계급 및 계층갈등, 지역갈등, 노사갈등, 교육과 취업갈등, 세대갈등, 종교갈등 등이 아노미 현상을 심화 확산시키고 있다. 

이 같은 복합적 갈등상황 속에서 한 개인의 가치지향과 행동선택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가 처한 관계상황과 대상집단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면서, 상호불신과 집단이기주의 등 부정적 역기능적 가치관이 만연하고 있다.

이 같은 아노미 현상은 경제적 부도덕성과 경제윤리 부재로 인한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의 확산, 과소비와 사치풍조 조장, 부의 편재와 경제적 불평등, 정경유착, 족벌세습경영, 차입금에 의존한 무리한 투자, 일상식용품에까지 손을 대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기업확장 등을 야기시킨다.

오늘 한국사회 전반에 총체적 아노미 현상이 짙은 안개처럼 파고 들고 있다.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생명의 관계망에 균열이 생기고 있고, 한국사회의 사회생태적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오늘 아노미 현상으로 인해 총체적인 관계의 위기를 맞은 한국사회는 심층적 존재론적 차원의 치유와 화해를 요청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집인 '오이쿠메네'의 상생적 살림살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두 개의 기둥이 정의와 평화라면, 치유와 화해는 아노미 현상의 극복을 위해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게 하는 과정인 동시에 그 결과이다.

치유와 화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치유와 화해는 총체적인 관계의 변화를 동반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타락한 인류와 탄식하는 피조물을 구원하고 해방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성육신 사건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우리 안에서 수직적, 수평적, 우주적 차원이 통합된 전인적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신다.

하나님의 치유와 화해의 사역은 역설적으로 희생자의 삶 안에서부터 시작하여 가해자에 의해 빼앗기고 파괴된 희생자의 인간성을 회복시켜준다. 인간성의 회복은 치유와 화해의 핵심이다.

치유와 화해의 경험은 은혜의 경험, 즉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관계 속에서 아노미 현상으로 손상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경험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성은 신성을 반영하고 신성과 소통하게 하는 수단이 되며 이 같은 인간성의 회복이 바로 치유와 화해의 경험이다.

하나님께서 가해자가 아닌 희생자로부터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시작하시는 것은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과 역사적 예수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한다.

가난한 자, 과부와 고아, 억눌린 자와 감옥에 갇힌 자 등 주변화된 약자들을 환대하시고 편드시는 하나님은 바로 궁극적 희생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의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시작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치유되고 화해된 희생자를 통해 가해자를 회개와 용서의 자리로 초대하신다. 여기서 회개와 용서는 치유와 화해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결과물이 된다.

오늘 한국교회는 아노미 현상으로 파괴된 생명의 망을 복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화해의 복음사역을 위탁 받고 있다.

교회는 수난 당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에 대한 영적 감수성을 가지고 아노미 현상으로 인해 상처받은 희생자로부터 출발하여 총체적 생명관계를 복원하는 '치유와 화해의 생명망짜기' 사역에 헌신해야 한다. 교회는 아노미 현상에 빠져 신적 인간성을 상실하고 하나님과의 소통이 차단된 희생자에게 치유되고 화해된 인간성이 제공하는 삶의 정체성과 상호의존성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치유되고 화해된 인간성으로의 변화를 통해서만 아노미 현상으로 인해 균열된 생명의 관계망을 총체적으로 회복하는 변화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 같은 복음의 본질적 사역을 위해 먼저 교회 자신이 궁극적 희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되고 화해된 인간성을 지닌 생명공동체로 날마다 거듭나야 한다.

이홍정목사/한일장신대 선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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