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정신적 가치

빈곤한 정신적 가치

[ 논단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6월 08일(수) 11:38

최근 불거진 부산 저축은행 사태가 청와대와 민주당의 정치공방으로 번지는 가운데 상당수 국민들은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구속을 단순비리가 아닌 권력형게이트로 보고 있다. 또 국정조사가 이뤄질 경우 감사원장을 지낸 김황식 총리가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현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MB 정권도 역대 정권처럼 '집권 4년차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정권 말에 모든 게이트는 탐욕에서 비롯된다. 물질적 발전과 풍요에 상응하는 정신적 가치는 빈곤하기만 한 욕심이다.

현대사회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규정할 수 있지만 단순화하면 물질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근대 문화가 물질문명 위주로 형성되어 왔고, 물질주의가 인간의 삶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다.

인간의 삶의 질을 논함에 있어 물질적 토대를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물질적 발전과 풍요에 상응하는 정신적 가치를 세우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물질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것들에 취하고 중독되어 가치있는 진정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다.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주는 빈곤을 모른 채 오늘을 산다.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사람들로 이 세상은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은 물질을 소비하며 자아를 실현한다고 착각한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도 인격보다는 재력, 연봉, 주거, 자동차 등으로 평가한다.

대중 매체는 광고를 통하여 상업주의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매스컴은 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이렇게 수요를 창출함으로서 소비를 확대 재생산하므로 물질주의는 심화되고 있다. 이런 물질주의의 병폐는 사회가 극도로 산업화되면서 물질주의의 가치관을 규제할 윤리적, 도덕적 대책을 세우지 못한데서 기인한 황금만능주의 사상이라 하겠다.

병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병원에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의 안타까움을 보기보다는 병원에 환자가 많으니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도 모르게 물질주의에 빠져있다. 우리는 물질주의가 아니라 탈물질주의로 살아야 한다.

물질주의는 경제적 안정, 신체적 안정, 사회질서 유지 등을 중시하는 가치관이며, 탈물질주의는 발언권 및 언론의 자유보장, 인간적인 사회로의 발전, 자아실현, 자기표현 등을 중시하는 가치관이다.

우리의 가치관이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변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이나 물질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의 법만이 우리를 통제하며 다스리고 인도하시도록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열어 놓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순례자의 삶이다. 순례자의 인생은 그저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질주의의 삶은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서 물질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 물질을 쌓아두지 말라"고 하신다. 또한 바울은 "탐욕을 버리라, 자족할 줄 알라"고 한다. 물질의 힘은 소유에 있지 않고 나누며 바르게 사용함에 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 타인을 위하여 살아갈 때 우리사회는 물질주의의 병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밝은 사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시며 목 놓아 우셨다. 왜 주님이 우셨는가? 부패한 지도자들 때문이다.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은 집권 욕에 눈이 어두워진 정치 지도자들로 인하여 일어났다.

세계 역사를 보면 한 나라의 멸망은 정치 지도자들의 욕심과 부패에서 기인하였다. 왜 주님이 우셨는가? 타락한 민중 때문이다. 우리는 부패한 지도자들과 타락한 민중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애국은 먼저 마음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심정은 눈물로 표현된다. 느헤미야는 조국의 비참한 참상을 들었을 때 가슴이 메여 슬퍼하고 통곡하며 기도하였다. 사람의 눈물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기에 기도의 눈물이 떨어지는 곳에는 새 역사가 창조된다.

양원용목사/광주 남문교회, 본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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