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노이아 (μετανοια) 세번째 이야기

메타노이아 (μετανοια) 세번째 이야기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1년 05월 06일(금) 15:57

종교 간의 갈등으로 세계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뿐만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해서도 이해와 존중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줄기차게 논의되어왔던 종교다원주의는 우리 기독교인이 슬기롭게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동ㆍ서양의 다양한 사상을 섭렵하여 타 종교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 편협 되지 않은 건강하고 참된 기독교인의 소양을 함양하는 것에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각한 문제는 예수를 잘못 믿는 것이며 더 심각한 것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장자는 '소요유'에서 "조금 아는 것(少知)으로 많이 아는 것(大知)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小年)으로 긴 삶(大年)을 측량할 수 없다"하였고, 명령(冥靈)이란 신수(神獸)는 "봄ㆍ가을이 오백 년이지만, 춘(椿)이라는 나무는 봄ㆍ가을이 각각 팔천년씩의 수(壽)를 누린다"하였다.

새벽이슬과 함께 탄생했다 곧바로 사라지는 이슬 벌레는 조석의 일을 알지 못하며, 하루살이는 내일을 알지 못하고, 매미는 겨울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짧은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교의 팽조는 칠ㆍ팔백 년을 살고도 오래 살았다 하니 '춘' 이란 나무에 비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렇듯 인간의 인식능력이란 하잘 것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만물제동(萬物齋同)의 사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다. 단지 여러분이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천도교, 천주교, 대종교(단군교), 각세교, 봉남교, 용화교, 대순진리회, 증산도, 원불교, 도교, 무속, 불교, 기타 등등…. 여러분은 불교에 대해서, 유교에 대해서, 더 나아가 요즘 무섭도록 그 교세를 확장해가는 증산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여 미신이라 치부하여 그들과 말 섞는 것조차 꺼리지 않는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종교와 미신의 차이점을 단언하자면 믿는 자가 다수면 우리는 종교, 소수면 미신이라 단정한다. 오늘날 증산도가 이를 잘 증명하고, 대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실은 자기 나라말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외국어와 비교함으로써 자국어의 특색이나 장ㆍ단점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의 종교밖에 모르는 사람은 실상 그 종교를 투철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 다른 종교와 비교함으로써 자기가 믿는 종교의 특질을 잘 알게 되어 거기에 따라 이해가 깊어질 테니 말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다만,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에 무조건 편승하여 극도의 배타성을 띤 호교적(護敎的)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는 타 종교에 대해 배우고, 더 나아가 다른 제반 사상들을 두루 섭렵해야 하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나는 한자교육의 중요성도 적극 강조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는 크게 청각적 어휘와 시각적 어휘로 구별된다. 예컨대 '어머니' '나무' '물' 등의 어휘는 귀로 들어서 그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청각적 어휘다. 반면에 '방화(防火/放火/邦畵)' '사기(砂器/士氣/詐欺)' '거부(巨富/拒否)' '정체(停滯/正體)' 등은 지식인이라도 듣고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시각적 어휘라 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 실린 어휘의 7할 이상이 한자 어휘다. 우리의 성경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끝으로'장자'의 '추수편'을 보면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모두 경계 없는 독서와 폭넓은 배움의 자세를 통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내 가정, 내 교회, 나만의 종교라는 좁은 공간의 틀을 벗어나 통전적 신앙으로 세계를 향해 눈을 크게 뜨는 여러분이 되길 두 손 모아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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